‘도시어부’, 올해 가장 특별한 예능으로 손꼽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올해 예능의 경향은 ‘여행과 삶’으로 집약될 수 있다. 누군가의 여행을 따라가거나 욜로와 같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구경하거나 여행과 일상의 시선을 뒤바꿔서 새로운 자극과 흥미를 자아내는 예능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런 흐름은 내년에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 보고서 등에서 2018년에는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희망하는 젊은 직장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행시킨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등 실현가능한 행복 추구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예능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올해 새롭게 등장해 주목받은 예능들이 여럿 있다. 그중 가장 특이한 영역에서 사랑받은 프로그램은 단연 채널부터 마이너한 채널A의 <도시어부>다. 특정 문화와 예능이 활발히 이종교배 중인 오늘날 낚시라는 고유한 레저 문화와 예능이 만나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세련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트렌드에 찰떡같이 들어맞고, 기대치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출연진이 뭉쳐서 이룩해낸 성과라 더욱 눈부시다.



낚시는 올 한해 TV와 예능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취미 레저였다. EBS는 올 봄 <성난 물고기>라는 낚시 전문 프로그램을 론칭했고, 일장춘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짧았지만 <세모방>의 전성기는 리빙TV <형제꽝조사>와 함께했다. 마이크로닷 캐스팅의 토대가 된 <정글의 법칙>이나 <삼시세끼> 등에서도 낚시는 중요한 에피소드로 등장했다. 덕분에 낚시 캠핑과 서핑에 이어 젊은 세대의 신흥 레저 분야로 떠올랐다. 그러자 본래의 영토라 할 수 있는 아저씨들의 취미 분야에서도 수십 년 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등산을 밀어낼 정도로 활황이다.

하지만 <도시어부>가 시청자를 낚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낚시 때문이 아니다. 가만히 <도시어부>가 매력을 발산하는 방식을 지켜보면 철저히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문법을 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경규와 이덕화, 마이크로닷 (그리고 이태곤, 박진철)이라는 정체 불분명한 조합이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를 갖고 하나의 식구로 뭉쳐지는 과정이 <도시어부>의 핵심이다. 매일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어느 바다를 가든 낚시를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매주 이들의 출조를 기꺼이 따라 나서는 것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관계와 즐거움이 짜릿한 웃음의 손맛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낚시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도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은 여기에 있다.



<도시어부>의 낚시는 낚시라는 레저 자체의 매력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서 캐릭터들이 관계를 맺어 형성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기틀을 마련하는 토대다. 수십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을 정도로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혹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감대를 형성해 출연자들 끼리를 물론이고 시청자들과도 하나로 엮는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문화를 포섭하는 예능 트렌드와 리얼버라이어티의 문법이 맞물린 포인트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세대와 경력을 초월한 커뮤니티가 마련되니, 낚시를 갖고 경쟁을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누가 1위할 것인가를 지켜보기보다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를 함께 누리는 데 더 큰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서로 견제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챙기는 것도 그 못지않다. 이번 주 모든 스텝들과 출연진들이 체력 소모가 심한 지깅 낚시에 힘겨워하는 이덕화에게 응원을 보냈고, 이덕화는 “사랑하는 아우들아”라며 어복이 내린 이경규와 지깅에 강한 마이크로닷에게 축하를 건넸다. 이런 관계망의 중심에는 “아버지 저예요”를 외치는 이경규가 있다.



물을 만난 이경규는 그야말로 어복의 황제 겸 예능 신의 아들이다. <도시어부>의 이경규는 쉴 줄 모르는 예능 머신이다. 낚시를 할 때나 출조 준비를 할 때나 누군가 게스트로 합류했을 때나 요리를 할 때나 지치는 법 없이 분량을 배급하고 화려한 단독 드리블로 뽑아낸다. 이경규는 이제 <남자의 자격> 시절의 이윤석이나 김종민, 유재환 같은 샌드백 역할을 하는 멤버를 곁에 두지 않는다. 중심에 서서 리드하는 형님 예능을 벗어나 스스로 웃음을 창출해내는 테크니션으로 활약한다. 위로는 형님을 모시면서 깐족거리다가 한 번씩 혼나고, 아래로는 동생들과 티격태격하는 개구쟁이 노릇을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도시어부>가 올해 가장 특별한 예능인 이유들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고민이 많은 오늘날 취미‧레저를 예능의 영역으로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트렌디하고, 예상하기 힘든 조합으로 리얼버라이어티의 재미와 정서적 유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전통적이며, 대중문화계의 변방인 아재들의 취향으로 대중성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소재가 가진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이 난 이경규가 얼마나 따뜻하고 재밌는 예능인인지, 여전히 얼마나 가치가 큰 예능 선수인지 <한끼줍쇼> 이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그렇다보니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낚시에 전혀 관심 없는 시청자들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낚시꾼의 세계와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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