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딱 어울리는 강호동·이경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17년 연말 강호동과 이경규는 아무런 상을 받지 못했다. 지난 한해 예능을 정리하면서 이 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중파 연예대상 시상식이 더 이상 한해의 예능을 정리하는 영예로운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뜻이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며 비약적인 반등을 이룩한 강호동과 이경규가 연말 시상식의 들러리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연예대상 시상식이 더 이상 예능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님을 알리는 방증이다.

2년 전 수요일 저녁 밥동무로 강호동과 이경규가 뭉쳤을 때 이 둘은 끝없는 내리막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 둘의 만남 자체가 처절하리만큼 절박한 위기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형님’ 예능을 추구하던 대표적인 MC 둘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함께한다는 예측 불가의 마지막 승부수는 보기 좋게 통했다. 강호동은 감성적이고 말 많고, 부담스런 애교와 함께 이경규에게 구박당하는 샌드백 역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경규는 특유의 피곤함 속에서도 시민들을 편안하게 카메라 앞으로 끌고 나오는 연륜 있는 진행으로 교감을 이뤄냈다. 새로운 역학 관계와 상황 속에서 그간 쌓인 비호감 이미지와 올드한 진행 스타일이란 고정관념을 벗어내고 정감 가는 인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씨앗이 꽃을 피운 게 바로 2017년이다.



특히 대부분의 활동을 성과로 연결시킨 강호동의 늠름한 귀환은 2017년 예능을 정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지난해 강호동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 예능인은 단연코 없다. 그런 그의 최고의 폼은 이번 주 단 5회로 마무리한 tvN <신서유기 외전-강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끼줍쇼> <아는 형님> <섬총사> 등에서 꿈틀거렸던 강호동의 인간적인 매력은 연말에 편성된 5회분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에서 터졌다. 카메라 앞이 아니라 불 앞에 선 강호동은 오버와 에너지를 버리고 진정성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더니,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 바쁜 와중에도 화목하고 행복한 주방이란 모토를 앞세우며 동생들을 다독이고, 이끌었다.

이경규의 “아버지 저 경규예요”와 마찬가지로 나긋한 사투리로 “화내지 말아요” “싸우지 말아요”, “당황하지 말아요”를 연신 외친 강호동의 인간적인 모습과 섬세한 리더십은 제2의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시그널이다. 이제 특유의 에너지로 시청자들까지 밀어붙이던 스타일은 개그 소재로만 남았다.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샌드백 역할을 하는 강호동의 존재는 <아는 형님>의 고공행진과 함께 <강식당>이 <신서유기>시리즈 최고 시청률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었다. 심지어 가장 잔잔했던 <섬총사>도 벌써 올해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목요일 밤에 새로운 텃밭을 일군 이경규도 어복과 어신이 강림하면서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도시어부>가 가장 좋아하는 일로 돈까지 버는 최상의 근무 여건이라 마음이 유해졌던 것인지 예능 대부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리얼버라이어티 MC진의 허리 역할을 맡아 웃음을 책임진다. <무한도전>을 예로 들자면 전성기 시절 박명수의 역할을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위로는 이덕화에게 깐족거리고, 아래로는 마이크로닷에게 눌리고, 이태곤 등과 티격태격한다. 그 결과 <도시어부>는 단 5회 만에 <썰전>을 끌어내리고 동시간대 종편 시청률 1위에 올랐으며, 평균 4%대의 시청률에 안착했다.

한때 연예대상 트로피의 향방이 초미의 관심을 불러 모은 시절이 있었다. 연말이 되면 한해예능 판도를 정리하면서 연예대상 수상 여부를 예측하는 기사가 쏟아졌고, 결과 발표 이후에는 타당성 여부를 놓고 여기저기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실제로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해의 예능 판도와 연예대상의 향배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예능을 호령하던 쌍두마차 시절 이 둘의 라이벌구도는 방송 3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고, 2016년까지 12년간 연예대상을 받아온 유재석이 올해는 과연 몇 관왕을 했는지 등등이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최고의 폼으로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군 예능 MC들이 빈손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부활이란 드라마를 쓰고서도 말이다. 연예대상 방식에 대한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2017년은 강호동,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경규의 해였음을 이 자리를 통해서 꼭 언급하고 기록해두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tvN,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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