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추억의 드라마를 재방송으로 보는 느낌이라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JTBC 금토드라마 <언터처블>은 나름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북천이라는 가상의 지방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북천은 이 드라마의 촬영지인 부산이 될 수도, 혹은 인천이나 대구, 광주도 될 수 있다. 그 도시가 어디이건 <언터처블>은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않던 지방도시 권력가의 어두운 힘을 전면에 내세운다.

북천에서 장씨 일가는 거대한 스모그처럼 이 도시의 곳곳에서 스며들어 있다. 이 장씨 일가에 의해 북천의 수많은 일들이 좌지우지 되며 북천 시민이 이들에게 대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북천의 시민들은 장씨 일가를 욕하면서도 그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며 살아간다.

<언터처블>은 전 북천시장이자 북천의 황제에 가까운 존재 장범호(박근형)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물론 드라마 중반에 이르러 죽은 줄 알았던 장범호가 되돌아오지만). 아비가 죽자 장남 장기서(김성균)와 차남 장준서(진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천의 장씨 가문을 이끌어야 할 처지가 된다.

장남 장기서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북천시장에 출마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서가 그런 재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용기 있고 핸섬하고 다부진 차남 준서에게 콤플렉스를 지닌 장남에 불과하다.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심지어 동생을 사랑하던 옛 대통령의 딸 구자경(고준희)과 정략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기서의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기질은 극에 달해 욱하면 사람을 죽도록 팬다. 여자들의 어깨에 죽을 ‘사’자 문신을 새기는 기괴한 취미까지 지니고 있다.



<언터처블>은 종종 기서가 지닌 극한의 폭력성향을 파고들며 소름끼치는 스릴러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순간 드라마의 몰입도가 잠시나마 상승한다. 일상의 대사를 칠 때는 무언가 1990년대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의 문성근처럼 문어체 톤으로 읊조려 왜 저러나 싶은 배우 김성균도 그런 장면에서는 이 배우만의 섬뜩한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한편 차남 장준서는 사랑꾼이라 집안의 권력을 승계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의 관심사는 억울하게 죽은 아내의 원수를 갚는 일이 전부다. 더구나 준서는 처음부터 장씨 집안의 더러운 권력이 싫어 북천을 떠난 녀석이다. 형사인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북천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개인정보를 속이며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아내의 비밀이 무엇인지 파헤치기 위해 북천으로 돌아온 것이다.

<언터처블>은 돌아온 차남인 장준서가 북천에서 북천에 얽힌 더러운 권력의 매듭을 풀어가는 이야기이기도하다. 그 이야기의 서사는 사랑하는 아내 윤정혜(경수진)의 죽음과도 밀접하게 엮여 있다. 윤정혜는 형사의 딸이었고, 그 형사는 북천의 장씨 집안과 얽힌 비리를 캐다 그만 제거 당했으니까.



이처럼 <언터처블>은 드라마를 배경으로 하는 큰 그림만 보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시놉시스가 대박이라고 이야기가 꼭 재미있으리란 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언터처블>이 그런 예다.

드라마는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매회 디테일한 장면들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눈을 끄는 장면, 장면에 어울리는 맛깔스러운 대사,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전개는 필수다. 더구나 시청자의 눈을 잡아두는 것은 아무래도 큰 그림이 아니라 그런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언터처블>은 아쉽게도 그런 디테일을 모두 놓친다. 호랑이를 그려놓았지만 정작 내내 흔드는 것은 호랑이 꼬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작 <언터처블>은 삐걱거리기 일쑤다. 진지하고 어두운 장면과 형사들이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연결고리 없이 그냥 이어진다. 형사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 또한 이보다 더 썰렁한 아재개그는 세상에 없을 것만 같다.



사건의 진행을 위한 미끼나 플롯은 너무 작위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자연스러운 재미를 반감시킨다. 드라마의 한 축인 맛깔스러운 대사 역시 <언터처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한 평면적인 대사를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추억의 드라마를 케이블채널로 보고 있는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언터처블>에는 감초 연기로 유명한 조연진들도 여럿 등장하나 그 배우들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한다. 그렇기에 모든 캐릭터들이 다 따로 노는 느낌이 들 때가 여러 번이다. 주연급의 배역을 맡은 고준희, 정은지, 김성균 역시 그 역의 무게감에 어울리는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다는 인상이 짙다.

상황은 이러한데 배경음악만 홀로 긴장의 아드레날린을 뿜어대며 고막을 긁어댄다. 정작 아무런 긴장감도 대단함도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인데.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