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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시그니처 만든 서지혜, 캐릭터 못 살린 고준희
기사입력 :[ 2018-01-09 14:45 ]


시그니처 여배우 서지혜·유인영……아쉬운 고준희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에 등장하는 서지혜는 그녀만의 시그니처가 있다. 큰 눈에 흰 피부를 지닌 전형적으로 예쁜 얼굴까지는 여느 여배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미모 위에 살얼음처럼 엷게 밴 냉기를 얹으면서 그녀만의 무심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감정의 진폭이 잘 드러나지 않는 나직한 알토 톤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바로 200년 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가는 양장점 주인 샤론이 탄생한다.

배우 서지혜에게 샤론이 인생 캐릭터인 것만은 틀림없다. 여자 서브 캐릭터를 유달리 잘 쓰기로 유명한 김인영 작가는 이 배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맞춤옷 캐릭터를 선물했다. 하지만 서지혜가 <흑기사>의 샤론을 통해서만 그녀 특유의 시그니처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데뷔 초부터 그녀는 많은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전형적인 드라마의 여주인공과 그녀의 연기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착하고 유순한 캔디와도 온갖 감정을 다 내비치며 눈을 부라리는 악녀와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를 잘하지는 못하는 젊은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허나 2014년 박경수 작가의 SBS <펀치>의 최연진 검사로 돌아오면서 서지혜는 본인만의 시그니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펀치>에서 최연진 검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악역에서 선한 역할로 변해가는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서지혜는 이때부터 감정을 숨기는 냉정한 미인의 모습을 본인의 시그니처로 삼은 듯하다.

SBS <질투의 화신>의 아나운서 홍혜원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모든 걸 다가진 금수저에 냉철함까지 지녔지만 은근히 웃긴 홍혜원을 서지혜는 능숙하게 소화해 냈다. 평범하고 친근한 매력의 배우 공효진, 우아함과 경박함을 노련하게 넘나드는 배우 이미숙 사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냉정한 얼굴로 은근하게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그녀 특유의 재능이 빛났다.

<흑기사>의 샤론은 서지혜가 그동안 만들어낸 시그니처와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만나면서 현재 최고의 조합을 보여주는 중이다.



한편 데뷔 때부터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 부잣집딸, 혹은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 캐릭터로 각인된 유인영 역시 본인의 시그니처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가는 중이다. 차가운 얼굴, 쨍한 높은 목소리, 남자주인공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이 배우만의 시그니처였다. 다만 그런 개성은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악녀 이상의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다. 비록 여주인공은 아니지만 악녀와 성녀의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 독특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들이 살아나고 있다. <펀치>의 최연진이나 <질투의 화신>의 홍혜원을 연기했던 서지혜 또한 이런 캐릭터들 통해 본인의 강점을 보여주었다.



유인영 역시 이런 새로운 캐릭터들과 어울리는 시그니처를 갖춘 배우다. 최근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장소라로 특별출연한 그녀의 연기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예다. 장소라는 일반적인 드라마라면 남녀 주인공의 사랑의 방해꾼 역할에 최적화된 캐릭터다. 재벌가의 딸에 욕심 많고, 가난한 여주인공에 대한 질투가 불타오르는 인물로 만들기 딱 좋다.

더구나 유인영은 늘 그런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의 강소라는 냉정한 마스크와 달리 섬세하고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면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리고 <황금빛 내 인생>에서 강소라는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큐피트가 된 이후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 떠난다. 장소라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다소 지지부진하고 궁상맞아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장소라를 연기한 유인영은 본인이 지닌 시그니처를 적절하게 변주하며 이 배우가 해왔던 기존의 역할을 깨부수는 재미난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한편 특유의 캐릭터는 만들어졌으나 딱 거기까지여서 아쉬운 배우도 있다. JTBC <언터처블>에서 청순한 악역 구자경을 연기하는 고준희가 그러하다. 2015년 MBC <그녀는 예뻤다>의 민하리를 통해 고준희는 인상적인 변신을 한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렸고 이것은 곧 이 배우의 캐릭터로 굳어졌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분위기는 만들어졌지만 아직 이 배우의 연기에는 이렇다 할 큰 매력이 없다. 여전히 여주인공의 여동생 같은 느낌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언터처블>의 구자경은 그런 면에서 더더욱 아쉽다. 우울한 여인의 얼굴에 악녀의 내면을 감춘 이 섬세한 인물을 고준희는 물에 물탄 듯 그저 흐릿하게 연기한다. 배우에게도 드라마 자체에도 썩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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