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울리는 박호산, ‘감빵생활’이라는 희비극의 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문래동 카이스트를 더 이상 못 보는 건가.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 강철두(박호산)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다는 소식에 시청자들은 괜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데다 그간 이 캐릭터에 푹 빠져있던 시청자들이니 이러한 불안감에 문래동 카이스트를 더 오래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그 누구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박호산이라는 배우가 이토록 존재감이 빛날 줄 몰랐을 게다. 드라마 초반을 가득 채운 건 제혁(박해수)의 이야기였고, 그 때 슬쩍 등장한 강철두의 혀 짧은 소리는 그저 코믹한 요소 중 하나 정도로 여겨진 면이 있다. 감방이라는 다소 무거운 공간이니만큼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는 캐릭터로서 자리한 인물.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강철두의 존재감은 나날이 높아졌다. 그는 거의 모든 인물들과 접점을 만들어가며 이야기 속에 어김없이 투입되어 자기 색깔을 만들었다. 고박사(정민성)와 함께 노래자랑 준비를 하고, 한양(이규형)과는 툭하면 밥상을 엎는 싸움을 벌이고, 유대위(정해인)나 똘마니(안창환)처럼 초반 살벌한 분위기를 내는 인물들 앞에서는 기싸움을 벌이며, 감방 방장인 장기수(최무성)와는 동갑내기의 공감대를 보이는 인물이 바로 그다.



강철두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게 된 건 보이는 중후한 외모와 상반되는 혀 짧은 소리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주는 웃음 덕분이다.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에서 그가 자못 진지하게 말을 해도, 그것이 혀 짧은 소리로 나오기 때문에 순간 긴장이 풀리고 이완되면서 나오는 웃음. 그는 이 감방이라는 공간에서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입만 열면 빵빵 터트리는 인물이 아들의 수술을 위해 자신의 간을 떼어주는 그 이야기에서는 오히려 반전의 눈물을 터트리게 했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그래서 아버지 간은 이식받지 않겠다고 하는 아들에게, 수술하는 날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아빠지?”라고 묻는 아들에게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강철두라는 캐릭터의 희비극적인 요소를 보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묘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어딘지 살벌할 것 같은 감방 재소자들이지만, 혀 짧은 소리로 의외의 웃음을 줄 정도로 거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이 드라마는 또한 한 없이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던 이들도 그 속내를 들어가 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이 있다는 걸 끄집어내준다.



그러고 보면 2상 6방 식구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무려 20년이 넘게 감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기수가 한 때 수줍은 사랑을 했었다는 이야기가 그렇고, 마약을 한 아들 한양을 감방에 보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렇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형제지만 사건을 통해 그 누구보다 끈끈한 형제애를 보여주는 유대위 이야기도, 또 강철두의 부성애 이야기도 그렇다.

어찌 보면 다소 신파적인 코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신파에 빠져버리지 않는 건 바로 강철두 같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웃음과 눈물의 균형감각 때문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 것처럼, 드라마는 인물 깊숙이 들어가 그 아픔들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쑥 빠져나와 본래의 그 웃음기 넘치는 일상을 보여준다.

박호산이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낸 건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이러한 희비극의 균형을 그대로 구현해낸 듯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보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웃기다 울리는 그 재미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