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은 어째서 신원호 월드에 흠뻑 빠져드는 걸까
신원호 월드, 그가 써가는 드라마의 새로운 작법

[엔터미디어=정덕현] 이 정도면 이제 ‘신원호 월드’라고 말해도 될 법하다. 사실 KBS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PD로 처음 대중들에게 스타 PD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던 신원호 PD를 떠올려보면, 이제 드라마계에서 굵직한 자신만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tvN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을 시작으로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까지 연달아 성공시켜 이른바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했고, 이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대성공으로 또 하나의 시리즈 탄생을 벌써부터 대중들은 기원하고 있다. 도대체 신원호 월드의 무엇이 대중들을 빠지게 만드는 걸까.

사실 이번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아닌 <응답하라>의 또 다른 시리즈를 들고 신원호 PD가 나왔다면 감히 ‘신원호 월드’라고 지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건 어쨌든 <응답하라> 시리즈가 만들어낸 아우라의 힘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때 아닌 감방 소재의 이야기로 또다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애초에는 도대체 감방 소재로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할까 싶었고, 특히 여성 시청자들에게 다소 딱딱하고 차가울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그는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비로소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신원호 PD의 작품세계와 그 문법이 보인다. 그것은 특정한 공간과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정서, 그리고 그 정서를 대변해내는 다양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응답하라 1997>이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이 갖는 사투리적 정서와 1990년대 팬덤이라는 특정 세대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응답하라 1994>는 서울의 한 하숙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지역에서 올라온 인물들의 교집합이 담겨졌다.

<응답하라 1988>은 이러한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가 담긴 신원호 월드의 세계가 이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라져 가는 골목길과 그 길을 사이에 두고 마치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가는 이웃들의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 이런 신원호 월드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보면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소재가 다를 뿐 그 궤를 이어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감방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의 때론 살벌하지만 때론 그토록 따뜻할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정 시기의 특정 공간이 설정되고 그 위에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담기는 신원호 월드의 특징은 그 작법 자체가 다른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드라마 작법이란 작가 한두 명이 대본을 쓰고 연출자가 이를 연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예능의 방식을 드라마 작법으로 그대로 가져온 신원호 PD는 연출자들과 작가들이 함께 회의를 통해 대본을 만들고(물론 그렇다고 메인 작가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협업을 통해 훨씬 대본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를 연출을 통해 구현해낸다.

그러니 드라마의 방영시기에 맞춰 어떤 정서들이 대중들에게 스며있고, 그 정서를 가장 표징할 수 있는 공간이 설정되면 그 위에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담는 방식은 이러한 협업에 훨씬 효율적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왜 하필이면 감방을 공간으로 삼았는가는 지금의 시대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장담이 갖는 지나친 판타지를 이제 더 이상 믿지 못하는 대중들이라면 오히려 끝없이 추락하는 삶의 밑바닥이 훨씬 더 공감대를 일으킬 것이고 그런 공간으로서 감옥만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래서 그 밑바닥 공간으로서의 감옥을 배경으로 그 곳에 떨어진 인물군들이 저마다 가진 사연들을 다차원적으로 풀어낸다. 이런 다차원적인 이야기들이 한 드라마 속에서 가능한 건 역시 여러 사람의 머리가 한데 모여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신원호 월드는 바로 이런 드라마의 완전히 다른 작법의 세계(협업의 세계)를 열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을 구현해내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응답하라> 시리즈에 기대지 않고도 신원호 월드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감방 소재의 이야기가 이토록 따뜻하고 훈훈할 수 있으며 또 재기발랄할 수 있다는 걸 느낀 시청자들이라면 아마도 이제 신원호 PD가 다음 작품에는 어떤 또 다른 공간을 가져올까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 공간 위에 세워질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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