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 대한민국 착한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썼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신원호 PD의 드라마는 세상에는 아직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21세기판 성선설, 더 확장하면 우리 모두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로 귀결되겠다.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1997년, 1994년, 1988년으로 돌아가 풋풋하고 착한 소시민적 삶을 살던 추억 속의 인물들을 불러왔다. 남편 찾기, 라는 코드 외에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까닭은 그 드라마에 담긴 선한 인간상에 있을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착한 드라마는 늘 있었다. 다만 각종 살벌한 범죄를 다루는 장르물이 각광받으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비추는 그런 드라마들을 대중들이 시시하게 느끼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신원호 PD는 지금은 낡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착한 드라마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반적인 드라마의 플롯을 해체하고 곳곳에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개그감 넘치는 요소를 집어넣어 일반적인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재미를 불어넣은 것이다.



신원호 PD의 최근작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감빵 생활 속 이야기와 ‘Pick me>’의 조합이라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신원호 PD의 특기인 과거 이야기가 아닌 단절된 현재의 이야기다. 이곳은 우리가 추억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곳의 이야기인 셈이다. 드라마는 서부교도소를 배경으로 수감자들의 삶을 스케치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남자를 폭행했다 그 남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투수 김제혁(박해수)은 수감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김제혁은 교도소에서 이전에는 만날 수조차 없던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슬픈 사람들을 만난다.

물론 드라마의 초반과 중반의 흐름이 다르기는 하다. 살벌한 감빵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듯하던 드라마는 에필로그 같은 구치소 시절을 끝으로 달라진다. 김제혁이 서부교도소로 이감되면서부터 신원호 PD의 장기인 착한 드라마의 본색이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범죄의 악취 품품 풍기는 살벌한 교도소 리얼리티 드라마를 원했던 시청자에게는 아쉬운 변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이 팀의 장기는 아니었다. 나쁜 녀석들이 등장하는 ‘OCN표 감빵’이 아니라 이런저런 사연 많은 잡범들이 등장하는 ‘신원호표 감빵’이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영화 <7번방의 선물> 같은 전형적인 신파극의 아류는 아니다. 오히려 대놓고 착한 드라마를 만들었던 <응답하라> 시절과 달리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신기할 정도로 여러 느낌을 넘나드는 줄타기 곡예를 보여준다.

우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매력은 사전조사가 충실했을 것으로 보이는 디테일한 현장감이다. 그런데 그 현장감 덕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서부교도소는 외국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살벌한 공간이 아닌 사람 사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작은 일에 행복을 찾고, 소소한 즐거움을 만든다. 더구나 그 공간이 자유가 제한된 감옥 같은 공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재미를 찾기 위해 벌이는 소소한 방법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감옥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도 진짜 나쁜 죄수가 있고 착하지만 억울한 죄수들이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이 억울한 죄수 혹은 죄는 지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죄수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코믹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장기수(최무성)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장발장(강승윤), 고박사(정민성), 해롱이(이규형) 등이 보여주는 코믹한 카니발은 긴 방영시간 중에도 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리얼리티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가 배경인 드라마답게 가끔은 스릴러적인 설정으로 보는 사람들을 움찔하게도 만든다. 등장 때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야수 같았던 유대위(정해인)나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던 똘마니(안창환)의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역시나 신원호 PD의 작품답게 이들은 어느 순간 김제혁과 수감자들이 함께 있는 2상6방으로 들어오면 ‘칠렐레 팔렐레’한 수감자들의 정서에 전염되기에 이른다.

드라마의 종반부에 이른 지금 신원호 PD가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선한 캐릭터들의 착함을 만들어내는 그 힘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들의 착함은 바로 타인에 대한 느슨한 여유에서 온다. 주인공 김제혁을 비롯해 교도관인 팽부장(정웅인), 또 2상6방의 사람들은 느슨하다. 그 느슨함을 통해 이들은 타인에게 관대하다. 혹은 타인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거나,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반대로 어쩌면 철저한 원칙주의자일지 모르는 나과장(박형수)이나 시키는 것만 로봇처럼 하는 똘마니(안창환) 같은 인물들이 악역의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심지어 드라마의 흐름조차 관대할 때가 있다. 솔직히 좌완투수에서 우완투수로 변신에 성공하는 주인공 김제혁의 이야기보다 2상6방 수감자들의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다. 전형적인 히어로는 동상처럼 가만히 있고 주변인들의 비중이 훨씬 더 큰 셈이다. 심지어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로맨스 지분 중 분량은 짧아도 충실하고 탄탄한 서사는 주인공 김제혁보다 같은 동성을 사랑하는 해롱이 한양에게 더 맞춰져 있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더구나 정작 남자주인공 제혁이 헤어진 연인 지호(정수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보여준 마지막 수단은 겨우 연락 안하면 자기 주먹이나 부수겠다는 문자였으니……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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