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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 돼야 여성 원톱 드라마에 대한 공포증 사라질까
기사입력 :[ 2018-01-23 17:09 ]


‘이판, 사판’과 ‘마녀의 법정’, 어쩌다 실패한 법정드라마로 남았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어쩌다보니 여성 법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연달아서 보았다. KBS <마녀의 법정>과 SBS <이판, 사판>이 바로 그 두 작품이다. <마녀의 법정>은 방영당시 시청률이 높았고 화제도 모은 편이었지만 <이판, 사판>은 한자리수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은근슬쩍 끝이 났다. 하지만 두 작품은 쌍둥이처럼 닮았으며 (심지어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성을 갖고 말장난하는 제목까지 비슷하다) 같은 단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단지 <이판, 사판>에서 그 단점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이 단점들은 모두 비슷하다. 스토리와 설정이 가리키는 당연한 방향을 게으른 관습 때문에 외면하거나 포기한 것이다. 다른 방송국에서 전혀 다른 팀이 작업한 드라마가 모두 같은 돌에 걸려 넘어졌다면 그건 그 관습의 힘이 그만큼 컸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건 여성 원톱, 또는 여성 투톱 드라마에 대한 공포증이다. <마녀의 법정>의 설정은 아무리 봐도 여성 투톱이어야 이치가 맞고 <이판, 사판>의 설정은 원톱이어야 맞는다. 하지만 드라마로 옮겨오는 동안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기괴하게 위축된다.



<마녀의 법정>의 여진욱 검사(윤현민)가 남자가 된 결과 이 캐릭터에게 배정된 대사가 절반 이상이 기묘한 맨스플레인이 되고 두 캐릭터의 역학 관계가 뒤틀려버렸다. <이판, 사판>은 더 심각하다. 가족과 관련된 심각한 사연을 갖고 있는 건 여자주인공인데, 정작 이 캐릭터는 정보 습득에도 밀리고, 출연시간도 줄어들고, 보호 대상 취급을 받다가, 결국 막판에는 청춘연애물의 주인공으로 변형되고 만다. 주인공이라고 포스터에 사진을 박아놓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데에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이들은 여자들을 갖고 이야기를 짜는 데에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사연에 대한 집착이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법조인으로, 이들의 직업을 가장 잘 다루려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물론 사연을 가진 법조인을 다룬 훌륭한 법정 드라마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두 법정물의 여자 주인공들이 가족과 관련된 비슷하면서도 극단적인 사연을 갖고 있다는 건 이들이 설정을 짜는 데에 건성이었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이 사연들은 성폭력 범죄를 그리고, 판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여주겠다는 목표에 다다르는 데에 계속 방해가 된다.



그 다음은 거대악에 대한 집착이다. 두 여자주인공의 사연들은 어쩌다보니 모두 장기적으로는 청와대를 노리고 있는 사악한 남자 정치가들과 연결되어 있다. 정치가들은 다들 싫어하니까 악당으로 만들기 쉽고 이들의 권력을 이용하면 주인공들을 위기 상황에 빠트리기도 쉽다. 하지만 쉬운 만큼 잘못 쓸 가능성도 높다. 주인공을 판사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로 몰고가는 <이판, 사판>의 문제가 더 컸지만, <마녀의 법정>의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다. 여성아동범죄 전담부로 넘어오는 범죄 대부분은 우리가 평범한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그게 이 사건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다. 거대악을 설정하면서 드라마는 이 범죄의 위험한 일상성을 놓쳐버린다.



마지막으로 이 두 드라마는 다루는 범죄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둔감하다. <이판, 사판>을 보라. 중학생 여자아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면서 시작하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32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살해당한 아이가 누구였는지, 그 아이가 어떤 고통을 겪고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관심도 없는 것 같다. 대신 역겹기 짝이 없는 강간범 절대악에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연을 주고 구구절절 변명을 하는데, 보는 동안 어이가 없었다. 작가는 살해당한 여자아이보다 강간범 절대악 중년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폼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어처구니없는 취향이 있는 법이니 그 자체를 뭐랄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엔 숨겨야 할 취향이 있는 법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녀의 법정>도 만만치가 않다. 자칫 선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다루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에 대한 기초적인 대비를 해야 하고, 이미 여기에 대한 매뉴얼로 쓸 수 있는 작품과 비평들은 충분히 나와 있다. <마녀의 법정> 팀은 이들을 충분히 검토해보았던 걸까? 아니면 이런 걸 보는 시간을 아껴 절대악 아저씨를 재수 없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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