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찬상영중’, 뻔한 걸 알면서도 흐뭇해진다는 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KBS2 <절찬상영중-철부지 브로망스>(이하 <절찬상영중>)는 성동일, 고창석, 이준혁, 이성경 등 4명의 배우들이 극장이 없는 한 지역을 찾아가 하루에 한 편씩 모두 4일 동안 영화를 상영하는 이야기다. 독특한 콘셉트는 아니다. 시골을 주 배경으로 삼는 기존의 농촌 예능 계보를 잇는 프로그램이며, 영화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JTBC <전체관람가>도 떠오른다. 새로운 내용도 아니고 곳곳에 아쉬움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응원하고 싶은 것은 소외된 지역과 세대의 얼굴을 비추며 ‘뻔해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 143일간의 긴 총파업을 잠정중단하고, 공영방송으로서 회복을 꿈꾸는 KBS표 공익예능 <절찬상영중>을 [TV 삼분지계]에서 살펴보았다.



◆ <전국노래자랑>을 잇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뭘까? 시청률이니 화제성부터 들먹이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다. TV를 보다가 불현 듯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떠나 보고 싶고, 함께 둘러 앉아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프로그램이 아니겠나. <절찬상영중>을 보면서 ‘우씨네마’ 팀이 한번 들러주길 소망하는 마을이 꽤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직접 초대하고, 소개하고, 함께 보는 영화라니! 무엇보다 문화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께 영화 관람이라는 색다른 기회를 선사하는 신선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뜻 깊다. 5회로 마무리 된다고 하지만 보완하고 다듬어서 KBS1 <전국노래자랑>처럼 우리나라 방방곳곳을 누볐으면 좋겠다.



다만 아쉬운 한 가지는 관객들의 소감과 평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주 칠순 할머니가 스무 살 처녀로 돌아가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 <수상한 그녀>를 보고 어르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했으나 방송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복합 예능이 대세인데다 예능의 꽃이라 할 ‘먹방’과 ‘쿡방’을 포기하기 어려우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래도 출연자들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마시고, 이런저런 게임을 하는 장면 대신 관객들의 얘기에 좀 더 귀 기울여 줬으면. 앞으로 어르신들의 심금을 울릴 <아이 캔 스피크>와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 한번 해보자.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수동적 관람의 아쉬움, 단체 관람의 로망

농촌의 노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영상물까지 제작했던 SBS 예능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가 처음 등장한 때가 벌써 30년 전이다. 그 뒤로 농촌과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예능이 나왔지만, 지역 방송사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에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농촌 버라이어티의 본격적 유행을 불러온 SBS <패밀리가 떴다>가 그러했듯이, 시골 풍경은 그저 오락의 배경이 되거나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머물고 노인이 대부분인 지역주민들은 쇼의 구경꾼 혹은 시혜의 대상이 된다.



<절찬상영중>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문화적 볼모지에 영화를 상영하는 형식은 지역 주민들을 수동적 관객으로 위치시키는 기존 농촌 예능의 한계를 정확하게 재현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가 상영되는 가운데 고된 시집살이와 자녀를 위한 희생이라는 전개 상황에 맞춰 노인들의 인터뷰가 단편적으로 삽입되는 장면은 이러한 단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인들의 목소리는 제작진이 미리 짜놓은 착한 예능이라는 ‘로망’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도 존재한다. 2회에서 배우 고창석이 극장에 대한 첫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았던 추억을 회고하면서 그는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킬링 타임 같은 목적보다는 자기만의 판타지를 가지기를 원하고 온다’고 말한다. <절찬상영중>이 ‘시골 낭만 극장’을 통해 제공하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판타지’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의 모델이 된 영화 <시네마 천국>이 그려낸 것처럼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의 공유. 문화콘텐츠의 의미가 갈수록 축소되는 시대에,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로망인 동시에 방송의 로망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뻔한 걸 알면서도 당한다

성동일이 <팔도강산>과 <미워도 다시 한번> 중 어떤 영화를 틀지 고민하다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선택했다는 말에, 예순 일곱의 영화광 이현수 할머니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거 뭐 사람 같이 보이나요? 지금 시대하고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줄거리를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판단이 정확하다. <절찬상영중>이 충북 단양의 어르신들을 위해 선택한 네 편의 영화는 ‘어르신들의 취향은 이럴 것이다’라는 안전한 고정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프로그램 자체의 만듦새 또한 그렇다. 일평생 영화 관람을 해본 일이 거의 없는 농촌 노인들을 위해 간이극장을 차려 영화 상영을 한다는 <절찬상영중>의 기획은 기존의 예능이 노인을 소비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답습한다.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재롱을 준비하고, 호젓한 시골의 밤길을 함께 걸으며 정을 쌓고, 어르신들이 맛이나 보라며 가져다 준 농산물을 맛있게 먹으며 보람을 느끼는 전형성의 반복. 참신성과 독창성의 면으로 보면 <절찬상영중>은 새로울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예능이다.



하지만 정작 <미워도 다시 한번>을 상영할 때 가장 즐거워했던 사람이 이현수 할머니인 것처럼, <절찬상영중>은 알면서도 당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예능이다. 영화 한번 구경 갈 여력 없이 고단하게 살아왔던 삶을 회고하다가 스크린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 시골 노인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은 볼 때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위력을 과시하고, 나아가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위해 우리 사회가 고민할 부분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성동일-고창석-이준혁-이성경의 멤버 조합 또한 안정적인 편이다. ‘브로망스’라는 부제는 이성경이 예능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전형적인 방식인 ‘털털함으로 남자 멤버들과 잘 어울려 노는 홍일점’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증명하지만, 그 점이 시종일관 활력을 잃지 않고 화면 위를 가로지르며 쇼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성경의 매력까지 가리지는 못한다. 엄청 새롭거나 유달리 잘 만든 예능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걸 알면서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예능이랄까. 하긴, ‘뻔한’ 것들은 그만큼 효과가 좋아 반복해서 사용해도 위력을 잃지 않았으니 ‘뻔한’ 것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