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꽃’, 잘 되는 드라마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처음 <돈꽃>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 드라마에 대해 오해했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드라마였다. 토요일밤 9시는 MBC 드라마의 시청률 황금시간대다. 황금시간대라도 빛나기보다 조금 천박하게 여겨지는 시간대이기도 했다. 이 시간에는 <금 나와라 뚝딱>과 <왔다, 장보리!>와 <당신은 너무합니다>가 방영되었다. 대충 어떤 드라마들이 포진하는지 짐작이 가는 시간대였다.

더구나 <돈꽃>의 소재 역시 그 시간대에 방송한 드라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재벌가가 등장하고 출생의 비밀이 등장했다. 단 차이점이라면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자가 남성이고, 복수의 화신으로 장혁이란 묵직한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 정도였다. 하지만 장혁이 등장한다고 해서 <돈꽃>의 작품성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장혁이란 잘생기고 분위기 있는 배우가 이 시간대의 흔한 막장극에 어떤 캐릭터로 안타깝게 망가질지 구경하고 싶은 천박한 호기심 같은 것은 있었다.

허나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돈꽃>에서 장혁이 연기하는 강필주는 망가지기는커녕 아름답다. 드라마는 강필주가 복수극의 블록을 하나하나 쌓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재벌가의 핏줄을 숨긴 남자주인공의 비밀스런 표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비밀을 간직한 남자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한 그 남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재벌가의 속물스러운 인간들을 매혹시키는 순간들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여기에 장혁이란 배우 특유의 무거움이 한 방울의 에스프레소처럼 떨어지면 <돈꽃>은 복수극의 남자주인공이 이토록 아름답고 분위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아니, 사실 장혁이 연기하는 주인공 강필주만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돈꽃>은 오랜만에 보는 매혹적인 드라마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많지만 매혹적인 드라마는 흔치않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 이르면 우스꽝스러운 코믹 막장극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돈꽃>이란 제목이 다르게 읽힐 정도다.

사실 <돈꽃>이라는 제목 안에는 이 드라마가 품고 있는 메시지가 모두 들어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 메시지에 수긍하게 된다. 돈에서 풍기는 꽃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는 거대한 재벌가의 사람들. 하지만 언젠가 꽃이 꺾이듯 그 돈의 방향에 따라, 혹은 그의 돈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강필주란 인물에 따라 휘둘리는 인간군상들.



아마도 그 ‘돈꽃’이란 단어와 그 돈꽃이 품고 있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표하는 인물로는 정말란(이미숙)을 꼽을 수 있다.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뻣뻣하게 청아그룹에서 버텨가는 정말란에게는 돈꽃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탐욕이 느껴진다. 심지어 재벌가의 핏줄도 아닌 아들 장부천(장승조)을 회장의 자리에 올리려는 그녀의 노력은 소름끼칠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꽃>을 보는 내내 정말란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배우 이미숙은 정말란으로 분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끌릴 수밖에 없는 재물의 냉혹과 매혹을 캐릭터로 형상화한다. 어느 순간부터 코믹 캐릭터나 주인공 어머니 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그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본인만이 지닌 매력을 발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돈꽃>은 돈과 돈을 통해 피 튀기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면서도 결코 막장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바로 이 드라마 특유의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자극적이지만 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드라마 자체는 정적이다. 반전이 거듭되지만 그 반전이 발레리나의 회전처럼 우아하다. 그렇다 보니 시청자는 흔한 막장극이 아닌 돈을 중심으로 한 한편의 현대적인 비극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더구나 최근 방영작 중 <돈꽃>만큼 에로틱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자극적인 노출신이 있다거나 민망할 정도로 맨살이 드러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 간에 흐르는 긴장감을 에로틱한 분위기의 연출로 극도로 끌어올린다. 다만 강필주(장혁)와 나모현(박세영)의 관계에서는 에로틱한 욕망의 감정은 없다. 그들 사이에는 이뤄지지 못한 로맨스 같은 서정적인 비극만이 있다.

하지만 강필주와 장부천, 강필주와 정말란 사이에는 에로틱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들은 서로를 원하면서도, 내심 서로를 의심하고, 또한 서로의 비밀을 훔쳐보고, 언젠가는 부숴버리기를 꿈꾼다. 그 사이에서 욕망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돈꽃>은 그 욕망의 팽팽한 긴장감을 때론 클래식하게, 혹은 능청스럽게 에로틱한 연출로 잡아낸다. 특히 <돈꽃> 20회의 엔딩 장면은 그런 연출의 백미다. 금방이라도 강필주와 정말란이 키스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강필주는 본인이 재벌가의 핏줄인 장은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처럼 <돈꽃>은 흥행성이 충분한 소재를 탁월한 방식으로 요리해냈다. 정적이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인상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거기에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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