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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기밀’, 사자방을 유행시킨 장본인에게 추천합니다
기사입력 :[ 2018-01-30 16:40 ]


‘1급 기밀’, 가족을 위해 식구를 배신할 수 있다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1급 기밀>은 고(故)홍기선 감독의 유작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기념비적인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1989)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했던 홍기선 감독은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입봉했다. 새우 잡이 배의 노예노동을 그린 영화는 비록 흥행하진 못했지만, 낭트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후 홍기선 감독은 비전향장기수의 삶을 그린 <선택>과 미군범죄사건을 다룬 <이태원 살인사건>을 찍으면서, 사회파 감독의 입지를 굳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09년 감독은 군수비리를 다룬 시나리오에 착수했다. 2010년부터 본격적인 기획, 제작에 들어가 8년간 공을 들인 영화 <1급 기밀>의 촬영이 막 끝났을 때 감독은 돌연 사망했다. 2016년 12월 15일 감독의 사망으로 유작이 되어버린 영화는 이후 이은 감독의 총괄하에 후반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개봉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대한민국 적폐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군수비리를 대단히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내부고발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환기시킨다.



◆ 실화에 바탕을 둔 군수비리

영화 <1급 기밀>은 세 가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98년 국방부 조달본부 구매담당관이었던 박대기씨는 국방부가 외국 무기 부품을 제작비보다 최고 4,500배 높은 금액으로 사들여 국고를 낭비하였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2002년에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인 ‘F-X 사업’과 관련하여 당시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의 고발이 있었다.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에서도 단종된 F-15K로 선택하도록 국방부 핵심인사가 시험평가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조주형 대령의 폭로로 약 2천억이 넘는 세금이 절감되었지만, 조대령은 오히려 군사기빌 누설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9년에는 김영수 해군소령이 MBC [PD수첩]에 직접 출연하여 해군납품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방송이 나간 후 31명의 관계자들이 사법처리 되었고, 국민권익위에서 주요부패신고자로 훈장까지 받았지만, 정작 해군 안에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떠돌다 전역했다.

<1급 기밀>은 세 가지 사건을 잘 버무려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다.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던 박중령(김상경)은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로 발령을 받는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 박중령은 딸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항공부품구매 과장으로 결재 서류를 뜯어볼수록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의문점들이 연이은 전투기추락 사고와 연관이 있음을 직감한다.



◆ 식구 되기를 거부하다

영화 <1급 기밀>은 조직적인 비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성원 모두가 비리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 은폐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 자세히 그려진다. 비리로 단단히 얽힌 조직에 새 사람이 들어갈 때, 조직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공범의식을 나눈다. 즉 그에게도 떡고물이 묻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회유하는 것이다. 박중령은 열심히 일을 하여 문제들을 발견하지만,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를 어떻게 ‘한 식구’로 만들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판공비 통장을 아내 이름으로 개설하게 하여 월 50만원씩 꽂아주면서, “워낙 유혹이 많은 자리이다 보니” 비리의 의혹에 빠지지 말라고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장군은 박중령을 당장 진급 대상자에 올리라고 지시하고, 박중령의 딸을 자신과 친분이 있는 교장의 학교로 전학시키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인맥을 맺고 있는 거물들과의 자리에 박중령을 소개한다.

영화는 대단히 촘촘하게 조직이 개인을 어떻게 포획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박중령에게 ‘식구가 되었다’고 말하며 다독인다. 사실 진짜 경계해야 할 유혹은 바로 이것이다. 잘못된 조직의 일원으로 공범의식을 쌓고, 달콤한 떡고물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선 박중령이 “그런 식구들을 배신하려고 하는 것이군요.” 라는 김기자(김옥빈)의 말에 움찔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유혹으로부터 발을 빼고,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1급 기밀>은 박중령이 용기를 내어 내부고발에 나서는 과정 뿐 아니라, 그것이 잘못된 이후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단단하게 서로를 믿고 협력했던 박중령과 김기자와 군법무관은 신뢰가 깨진다. 기자는 ‘특종하나 터뜨리기 위해 너를 이용한 것’이고, 군법무관은 군내부의 ‘라인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위해 내부고발을 이용한 것이고, 박중령은 양심이나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이익이나 조직에 대한 앙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서로를 불신하고 음해하는 사태.

더욱이 내부고발을 터뜨리면 대대적인 감사나 처벌이 일어날 줄 알았지만, 대충 무마되고 자신만 왕따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거나, 심지어 내부고발자만 비리의 책임을 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한 식구’가 되어 밀어주고 당겨주자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고픈 소박한 꿈도 포기하고 내부고발자로 나서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인가.



◆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영화 <1급 기밀>은 박중령이 그토록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 동인으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욕망을 제시한다. 흔히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이 높아서 좋은 주거환경과 교육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 등을 꼽는다. 가령 박중령의 딸이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군인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잘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는 것을 좋은 교육환경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조직비리에 가담하는 이유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 쯤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진짜로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박중령이 내부고발자가 되면서 집안은 들쑤셔지고, 딸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견디지 못한 아내와 딸은 외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버지가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으로서 외로운 선택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버지처럼 자랑스러운 직업군인이 되고 싶어 하던 딸에게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군인은 무엇인지 보여주며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박중령의 선택을 어떻게 어린 딸이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그냥 다른 사람들의 눈이 의식되어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아버지의 내부고발로 인해 오히려 딸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으로 그린다.



이것은 다소 판타지일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즉 자식들 핑계를 대며 ‘먹고사니즘’을 추종하는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정의와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감독의 당부 같은 것이다.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조직 비리가 가득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마치 감독의 유언처럼 느껴진다.

참고로 ‘사자방’은 사대강과 자원외교와 방산비리의 준말이다. 부디 이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기를 바란다. 비리의 몸통을 심판하는 일은 ‘자식들 보기에 부끄러워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우리시대의 과제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1급 기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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