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탄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어떤 영화는 실제 주인공을 숨겨야 그 감동의 효과가 커지기도 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런 영화다. 이 영화가 시작됐을 때 가장 전면에 나선 배우는 역시 이병헌이었다. 한 때는 동양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한물 간 전직 복서로 스파링 파트너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조하 역할을 이병헌은 천연덕스럽게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다.

사생활 문제로 질타를 받았던 이병헌이지만 적어도 연기에 있어서만큼 관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였다. <내부자들>의 3류조폭 안상구 역할을 통해서도, <밀정>에서 특별출연이지만 정채산 역할로 확실한 존재감을 세운 면에 있어서도 또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강변하는 최명길 역할로서도 그는 연기의 공력을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하라는 캐릭터는 그간 그가 보여줬던 카리스마의 정반대편에서 힘을 쪽 뺀 삼류인생 연기로 이병헌은 더욱 주목되었다. 버림받고 두드려 맞으며 홀로 세상과 사투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꿈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조하라는 캐릭터는 이병헌의 연기 스펙트럼이 갈수록 넓어진다는 걸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병헌이 전면에 나와 있어 이 영화가 ‘그의 세상’처럼 홍보되었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나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다른 데 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는 바로 조하의 동생 역할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홍보에서도 의도적으로 그 존재를 숨겨놓은 이 인물은 바로 그것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든다.

대사하고 해봐야 “네-” 정도가 대부분인 진태를 연기하는 박정민은 마치 진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이 인물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어눌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밝은 웃음 같은 걸 함께 주는 인물.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쩌면 박정민의 ‘연기 세상’이 이제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 걸 알리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저 배우가 누구야? 하고 질문을 던지고 나면, 그가 바로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옆자리에 든든하게 서 있던 송몽규 역할을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그 때도 사실 동주 역할을 했던 강하늘이 전면에 나와 있어 살짝 가려져 있었던 배우가 바로 박정민이었다. 그러고 보면 박정민은 이제 강하늘이나 이병헌 같은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연기를 해오며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확보해오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실로 이병헌이 깔아놓는 희비극 위에서 박정민이 깊은 감동의 연기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박정민이 선보인 피아노를 치는 연기는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물론 연출의 힘을 더해 완성된 것이긴 하지만, 실제 연주를 방불케 하는 피아노 연주 연기와 더불어, 서번트 증후군 특유의 독특한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서는 그 연주 무대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정민은 주어진 재능도 정말 특별한데 노력과 성실함도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배우다.” 함께 연기한 이병헌의 이 말이 그저 던지는 상찬이 아니라는 걸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동주>에서 드디어 자기 존재를 드러낸 박정민이 이제 자기 세상을 활짝 열어젖힌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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