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로 번지는 미투 운동, 방송계도 심각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이번 일에 대해 주변에 물어봤더니, 제가 평소 남녀구분 없이 쉽게 어깨나 등을 토닥거리거나 터치하는 습관이 있음을 깨달았고 깊이 반성합니다.” 이번 상습 성추행 혐의로 MBC에서 대기발령 조치를 받고 있는 드라마 PD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의 의미는 자신이 현재 받고 있는 성추행 의혹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소 ‘남녀구분 없이’ 하던 습관으로 불거진 일이라는 뜻이다.

이 드라마 PD는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왜곡되어서 제 인생이 망가질 정도의 잘못인지는 잘 헤아려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과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성추행 의혹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그것은 성추행이 아니라 자신이 의식 없이 행한 습관일 뿐이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일이 과장, 왜곡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이 사안이 자신의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 지금 검찰 내부에서부터 시작해 문화계로까지 번져나가는 미투 운동은 바로 그 잘못된 관성이 바로 성추행이고 성폭력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다. 그의 주장에 남는 씁쓸함은 이처럼 갖가지 갑을 관계 속에서 벌어져온 성폭력들이 피해자들에게는 극심한 상처를 남기고 있었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그것이 무슨 잘못이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다는 점이다.



JTBC <뉴스룸>에는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폭로’에 이어 최영미 시인이 출연해 자신의 시 ‘괴물’로 인해 확산된 문단계의 고질적인 성폭력을 폭로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괴물’의 시에 등장하는 시인 En선생은 ‘상습범’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성추행과 성폭력에 ‘세련되지 못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면 권력을 가진 그들에 의해 처절한 복수가 이어졌다고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왕따’로서 수십 년 간 문단에서 해당 문인을 배제시키는 일이었다. 그건 사실상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검찰에서 문단으로 이어지는 미투운동을 보면 이 성폭력, 성추행 사안들이 갑을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권력관계에서 벌어지고 폭로는 조직적인 복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 많다는 것. 드러난 사건들이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은 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방송계나 영화계는 드러나지 않은 이런 사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방송계에는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소지들이 그 어떤 조직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방송에 나오고 싶어 하는 이들과 방송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그걸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권력이 있어서다. 게다가 ‘작업’이라는 명목으로 사적 영역을 함부로 넘어서는 일들도 많다. 그 과정에 벌어지곤 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성폭력이나 성추행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 이들도 적지 않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MBC에서 성추행 의혹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도 최근 사장이 교체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만일 과거 그대로의 권력이 만일 이를 덮으려 한다면 그냥 묻혀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런 조직 내의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윗선의 확고한 의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사과를 했지만 그건 의도가 아니었고 잘못된 습관이었다는 이야기가 씁쓸함을 남기는 건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문화계가 가진 불감증을 드러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 일이 뭐 그리 큰 죄냐고 여전히 말할 수 있다는 건 여전히 이 사안이 가진 중대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문화계로 번지고 있는 미투운동은 갑을 관계가 너무나 많이 발생하는 방송계로도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곪을 대로 곪아 아예 죄에 대한 무감해진 이들에게 사안의 중대함을 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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