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철새, 새장... ‘마더’가 특별해지는 상징들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이 내 딸 버린 여자야?” tvN 수목드라마 <마더>에서 수진(이보영)의 양모 영신(이혜영)은 그의 친모(남기애)의 뺨을 올려 부치며 그렇게 말했다. 단순한 대사처럼 보이지만 이 한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특별한 시선을 담아낸다. 양모는 ‘내 딸’이란 표현을 쓰고 있고, 친모는 ‘내 딸 버린 여자’로 지칭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모와 친모 사이의 혈연적 고리는 깨져버린다. 낳았다고 엄마가 아니고 진짜 사랑을 주며 함께 해온 엄마가 진짜 엄마라는 것.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친모는 왜 자신이 수진을 보육원 문 앞에 자물쇠로 묶어두고 떠나버렸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 수진은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 더 아픈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대신 자물쇠로 묶여진 어린 자신의 모습이 일평생의 족쇄처럼 남았을 뿐이다. 보육원 수녀님에 의해 그 자물쇠가 풀어졌지만, 마음에 남은 그 자물쇠가 만들어내는 이중적인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자물쇠는 수진에게는 ‘엄마가 돌아오겠다는 약속’인 동시에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증표’인 셈이다. 그는 그래서 이미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자물쇠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나고 너무나 격분하여 유리잔을 스스로 깨 손에 상처를 냈지만 그는 다시 엄마를 찾아가 묻는다. “왜 그랬어요? 내가 미웠나요? 나 때문에 힘들었어요?”



수진의 이런 아픈 과거사가 등장하면서 왜 그가 친모로부터 학대당하던 혜나(허율)를 구출해내려 함께 도망쳤는가가 설명된다. 수진에게 혜나는 어린 시절 자물쇠에 묶인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그래서 수진이 혜나를 구출하는 건, 자기 자신을 구출하려는 안간힘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혜나는 또한 수진을 아픈 과거로부터 구출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 수진을 그렇게 버렸다는 죄책감은 친모에게도 평생의 자물쇠로 남았다. 그래서 친모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있는 새장 속 새들의 이름은 ‘수’와 ‘진’이다. 그는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린 수진에게 저지른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켰을 게다. 그러다 양모와 함께 수진이 나온 휴먼다큐를 자물쇠를 상기하듯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로 반복해서 본다. 어린 수진이 마치 친모에게 들으라 얘기한, “모든 엄마가 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말을.

새장 속 새들과 자물쇠 같은 이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바라보면 그 새들에게 먹이를 주겠다고 자청하고 그래서 혜나가 새장 열쇠를 갖게 되는 장면 역시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건 마치 혜나가 수진을 살아가게 해주고 어쩌면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무슨 일인지 새끼손가락을 잃은 친모에게 혜나가 ‘손가락 할머니’라고 불러주는 대목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딸을 버린 그 아픔을 새끼손가락을 잃었다는 설정 자체로 보여주는 친모 또한 어쩌면 혜나라는 아이에 의해 구원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할머니라 불리는 친모는 혜나에게서 그 어린 시절 자신이 버린 수진을 떠올린다.

<마더>는 그래서 다양한 엄마들의 면면들을 혜나라는 아이를 통해 그려낸다. 학대당하는 혜나를 잔혹하게 방치한 친모 자영(고성희)이 있는 반면, 생면부지지만 그런 혜나를 외면할 수 없어 스스로 아이의 엄마가 되려하는 수진이 있다.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아마도 그것 또한 아픈 사연이 있겠지만) 어린 수진을 보육원에 묶어두고 떠나버린 친모 손가락할머니가 있는 반면, 그 수진을 데려다 부족할 것 없이 키워낸 영신이 있다.

혜나라는 아이가 처한 잔혹한 현실에서 시작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더해 ‘진정한 관계’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암에 걸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영신이 유산이야기를 하자 수진은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유산이 영신에게 자신이 묶이는 자물쇠가 되는 걸 수진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수진은 자신이 연구하는 새처럼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한다. 그런 수진을 이해하는 영신은 한 푼도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넌 자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진을 버렸던 친모는 한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가며 수진의 이름으로 통장에 돈을 모은다. 그리고 친모라는 게 밝혀져 떠나는 수진에게 그 통장을 건넨다. 통장에 매달 적립된 돈은 거기 담겨진 친모의 마음을 드러내며 수진을 울리지만, 수진은 그 통장을 친모에게 돌려준다. 부모라면 응당 자식을 보호해주고 키워주는 일이 당연한 것이지만, 또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관계’로 서는 일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수진은 과연 자신을 여전히 묶어두고 있는 과거의 자물쇠를 풀어내고 훨훨 새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수진의 구원은 그래서 혜나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내는가에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혜나는 과연 친모의 폭력적인 방치가 만들어낸 그 아픈 상처의 자물쇠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동학대를 소재로 하면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드라마지만, <마더>가 담고 있는 많은 상징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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