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로맨스’, 게으르게 느껴지는 로맨스 드라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월화드라마 <라디오 로맨스>는 몇 년간 유행하는 웹툰 분위기의 빠른 진행 드라마와 살짝 다른 감성을 지니기는 했다. <라디오 로맨스>라는 제목에서 보듯 복고적인 감성이 담겨 있기는 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의 복고다.

한 가지는 <라디오 로맨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라디오 방송국이다. 배경은 현재지만 무언가 라디오방송국을 중심으로 하는 것만으로 복고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기는 한다.

더구나 라디오국 전설의 망나니 PD 이강(윤박)은 무언가 1980년대 방화나 1990년대 초반 대학 학회실에서 튀어나온 괴짜 같은 인물이다. 그는 시시껄렁하게 웃는 도인처럼 행세하며, 수염을 기르고 옷은 지저분하다. 워낙에 낡은 클리셰를 품은 인물이라 이강 자체는 오히려 신선하게 여겨지는 면까지 있다. 드라마계의 화석 같은 조연 캐릭터가 관 뚜껑을 열고 나온 느낌이랄까?



솔직히 이 이강만 튀는 인물로 만들어놓고 나머지 부분을 정극처럼 만들었다면 나름 <라디오 로맨스>는 복고풍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지닌 작품으로 느껴졌을 법도하다. 주연배우 김소현, 윤두준 역시 정적인 분위기의 로맨틱한 드라마에서 빛을 발할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이고.

그런데 <라디오 로맨스>는 이 위에 또 하나의 복고를 얹는다.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소설의 감성이 그것이다. 열혈 방송작가 송그림(김소현)과 냉정한 톱스타 지수호(윤두준)의 관계부터가 그런 면이 있다. 연예기획사 대표로 등장하는 남주하(오현경)나 라디오 작가계의 대모인 라라희(김혜은)의 캐릭터에 이르면 이건 완전 인터넷소설이다. 이들은 극의 재미를 위해 투입된 악역일 뿐 어떠한 리얼리티도 없는 조연에 불과하다. 딱 인터넷 소설에 등장하는 얄팍한 소비형 캐릭터들인 것이다. 드라마의 대사들 역시 가볍기 그지없는데, 안타깝게도 반짝이는 센스는 없는 편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다른 감성이 드라마 한편에 공존하다 보니 무언가 흐름이 두서없이 느껴진다는 데 있다. 더구나 캐릭터들은 가볍게 널을 뛰는데, 정작 드라마의 흐름은 아날로그 감성의 은은한 작품처럼 전개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그러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이 드라마를 지켜봐야 하는 걸까? 더구나 이제 5회에 접어들었는데도 주인공 지수호는 겨우 라디오부스에 앉아 첫 방송을 시작하는 단계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고 4회까지는 예고였다는 의미다.



그 예고편 같은 4회 동안 이어졌던 사건들 역시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송그림이 지수호를 라디오부스에 앉히기 위에 노력하는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기획회의를 위해 방송팀 전원이 섬으로 MT를 간다. 그곳에서 나름 특별한 사건이 하나 터지기는 한다. 일행과 떨어진 남녀주인공은 섬에 사는 노인을 만난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느라 정신이 나간 노인은 지수호를 아들로 착각한다. 주인공 남녀는 우여곡절 끝에 그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황당하고 작위적이고 심지어 익숙하기까지 한 이 장면이 삽입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노인이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는 인물이라는 감성적인 설정을 위해. 또 하나는 주인공 남녀가 잠시나마 서로에게 기대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허나 이 정도에 이르면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라디오 로맨스>는 아날로그와 인터넷소설이라는 두 가지 복고 감성을 의도적으로 조합한 게 맞는 걸까? 그냥 지난 시절의 여러 드라마적 설정 등을 뒤섞어놓고 편안한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홍보하는 게으른 로맨스 드라마에 불과한 것 아닐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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