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스티브 잡스가 남긴 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시리즈뿐이 아니다. 잡스는 우리에게 몇 가지 논쟁적인 문제를 던지고 갔다.

그 중 하나는 한국도 잡스와 같은 인물을 키워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물음은 잡스가 제도와 문화의 산물인가 하는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제도와 문화의 토양을 잘 조성하고 오랜 기간 꾸준히 공을 들이면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올까.

쟁점을 일반화하면 주장은 다음 두 갈래로 나뉜다.

- ‘잡스는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잡스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그의 ‘배역’을 맡았을 것이다.’

- ‘아니다. 잡스는 일정한 시대와 사회적 토대에서 활약했지만,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역할을 스스로 맡고 연출했다. 그는 전에 없던 드라마를 펼쳐보이며 정보기술(IT) 산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영웅은 시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뛰어난 인물도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개인을 부각해 영웅으로 띄우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원래 문제로 돌아가보자. ‘한국의 잡스’가 나오도록 할 수 있다는 측면의 논의를 살펴보자. 이 논의가 그럴듯하다면 ‘영웅 또는 천재는 만들어진다’는 일반론이 다소 힘을 얻게 된다. 물론 이 일반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한국 사회가 제도와 문화를 바꾸고 노력함으로써 잡스 같은 인물을 배출하는 것이 되겠다.

한 언론사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오간 ‘토양’은 다음과 같다.

- 도전이나 창의 정신을 격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 지나치게 평준화를 지향하는 문화를 지양하고 다양성을 장려한다.
- 미국과 같은 생태계를 조성한다. 생태계를 잘 만들면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천재로 잘 큰다.
- 한국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 한국은 IT 관련 지적재산권 보호가 미흡하다. 정부 용역은 지재권이 정부에 귀속된다.

잡스는 그런 토양에서 자랐나? 앞의 제언을 사실에 비춰보자.

- 정규 교육이 친 울타리를 벗어난 학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6개월만에 중퇴했다.
- 잡스는 까칠하고 괴팍한 CEO였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에서도 내놓은 타입이었다.
- 잡스의 성취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의한 게 아니라 기존 기술을 소비자 중심으로 아름답게 융합한 데서 비롯됐다.

독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잡스가 아니었더라도 잡스가 이룩한 일은 결국 이뤄졌으리라고 보시는가?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사진=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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