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못한 선전 영화 ‘아이들’ 리뷰

[오동진의 영화가이드]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영화 ‘아이들’의 흥행 얘기다. ‘아이들’은 1991년에 발생했고 2002년 결국 시신이 발견된 후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버림에 따라 영원한 미제로 남은 개구리 소년들 실종사건을 그린 영화다. 너무 어둡다. 우울하다. 어쩌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한편으로는 비겁하게나마 외면하게 되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획 자체가 승리라고들 했다. 이렇게 끔찍한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 한들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까 하는 점이 끝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재 보기좋게 성공하고 있다. 개봉 첫주를 지나 2주째에 다가서면서 전국 1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일단 전국 200만은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순제작비 40억원. 총제작비 60억원.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기에는 시간과 공이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성공적’이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이럴 때에는 슬슬 이런 얘기가 나와야 한다. 영화가 꼭 돈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영화가 다뤄야 할 것, 혹은 얘기해야 할 것은 종종 사회적 진실에 대한 문제여야 한다는 것. 그 진정성만으로라도 영화는 비록 상업성의 궤도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한들 역설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다.

‘아이들’이 극장가에서 비교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극중 흐름만으로 볼 때 심지어 흥미롭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것 참 의외의 얘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다루는 개구리소년 5명의 실종사건은 우리가 지금껏 들어도 한참은 들어 온, 인지도가 매우 높은 사건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1991년 대구 달서구의 한 마을에서 도룡농을 잡으러 갔던 아이들 5명이 한꺼번에 종적을 감춘다. 군경합동작전을 포함해 수많은 인력이 동원돼 아이들에 대한 수색작전을 실시했지만 모두 다 실패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실종된지 11년만인 2002년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인 채 발견돼 또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영화는 아이들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용감하게도 영화는, 아이들을 유괴했거나 혹은 살해했다고 생각되는 용의자를 영화의 한가운데로 끌어 놓는다. 이 영화의 화자 격인 방송국PD 강지승(박용우)은 국립과학대의 황우혁 박사(류승용)와 박경식 반장(성동일) 등과 함께 범인의 뒤를 좇는다. 하지만 이들은 온갖 의문만 증폭시킨 채 범인의 흔적을 찾아 내는데는 실패한다. 영화는 범인의 뒤를 캐는 미스터리 수사극인 척, 사실은 사라진 아이들 보다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세상의 주목을 끌어 보려는 사람들의 한탕주의 욕망을 극대화한다. 고라니 다큐멘터리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대구로 좌천된 강지승은 이 일로 화려한 방송계 복귀를 꿈꾼다. 황우혁 박사 의 관심 역시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을까 보다는, 죽었든 살았든, 아이들을 찾는데 있어 자신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에 쏠려 있다. 박 반장은 박 반장대로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도무지 앞장 설 채비를 보이지 않는다.



영화 ‘아이들’이 결국 얘기하려는 것은 이 시대와 지금의 사회에 만연돼 있는 ‘무감각의 무관심’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관심한 것조차에도 감각이 마비돼 있다. 사라진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주검으로 발견된 아이들의 사체를 두고 사건 책임자라는 사람은 아이들을 자연사로 몰아감으로써 경찰의 관료적 책임을 덮으려고 한다. 뒤늦게라도 자신의 이론을 꿰어 맞추려고 광분하는 황우혁에게 강지승은 “지식인라는 것들, 그저 뜨고 싶어서 안달”이라며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있어 강지승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왜 영화는 무려 20년전의 미제 실종살인사건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되돌리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범인을 잡아들여 한다는 공명심의 발로일까. 1991년 대구 달서구를 짓눌렀던 사회적 정치적 공기는 음산하다. 세상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니 뭐니 해서 어수선했지만, 뭐가 잘되가는 과정에서의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혼란과 혼돈스러움 그 자체로 느껴진다. 영화는 결국, 20년전 사회를 억눌렀던 정치사회적 기제가 지금도 거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닐까. 실종된 아이들을 찾지 못했던 것, 그리고 결국 그 아이들을 타살케 했던 것은 그 같은 분위기를 일소시키지 못했던 기성의 사회 시스템때문이었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 영화 ‘아이들’은 실종된 아이들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실종시킨, 우리 마음 속에서 이미 실종된 무언가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 = 영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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