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 낯선 설렘과 익숙한 따뜻함의 놀라운 균형 감각

[엔터미디어=정덕현] 13명의 단체회식이 있던 날, 60인분의 요리를 내놓고 하루를 마무리한 ‘윤식당’ 임직원(?)들은 가라치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피자집을 간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물론 길에서 처음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 게 이 곳 가라치코 사람들의 따뜻함이지만, 이 인사는 그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윤식당’을 한 번 찾아왔던 손님들이라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의 반가운 인사다. 윤여정을 알아보고 ‘마스터 셰프’라 부르는 소리에 그는 겸연쩍으면서도 반가운 속내를 드러낸다.

tvN 예능 <윤식당2>가 방영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다. 이제 8회가 방영된 것이지만 어쩐지 이제 가라치코라는 마을이 시청자들에게도 낯설지가 않다. 동네가 크지 않아서 그럴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윤식당’을 찾았던 손님들 한 명 한 명이 한식을 맛보며 나눴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기 때문이다. 물론 관광객들도 있었지만 특히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어느새 이웃 같은 익숙함과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꽃집을 하는 인상 좋은 마리 아주머니와 퉁명스러운 듯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는 남편은 두 번째 찾은 ‘윤식당’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음식을 시키고 한식의 맛을 즐긴다. 꽃집을 찾을 때마다 환하게 웃던 마리 아주머니의 그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맛좋은 고기를 원하는 두께로 척척 썰어 내주던 정육점 사장님도 그렇고, 아침마다 들러 신선한 야채를 사오던 슈퍼의 점원들도 이제는 먼 타국의 가게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 느껴진다.

단체회식을 치러서인지 그 회식 자리에서 “맛있어요”를 외치던 그 식당 임직원들의 흥겨웠던 모습들도 잊히지 않는다. 임직원이 격의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나오는 한식들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던 모습이나, 마침 ‘윤식당’을 찾아온 동네 주민들에게 그들이 한식을 추천해주는 모습도 떠오른다.

물론 가라치코라는 스페인의 섬 마을이 가진 아름다운 풍광은 이미 중간 중간에 살짝 살짝 보여진 바 있다. 하지만 <윤식당>이 지금껏 8회 분량 동안 집중한 건 그런 풍광보다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식당을 매개로 해서 그 곳을 찾는 관광객과 주민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 이것이 <윤식당>이 여타의 해외 로케이션 예능 프로그램들과 결을 달리 하는 부분이다.



일주일 가까이 가라치코에서 지냈지만 ‘윤식당’ 임직원은 그 곳을 제대로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단체회식을 치른 다음 날 가게 오픈을 저녁에 하기로 하고 이들은 드디어 가라치코의 풍광을 담으러 작은 여행을 떠난다. 박서준은 지그재그로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산골마을 마스카에서 카메라로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 풍광 앞에 환하게 웃음을 짓고, 정유미는 처음으로 도심에 나가 예쁜 가게들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출근한 윤식당에서 윤여정은 마치 촌구석으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집와 바깥세상은 보지도 않고 살아온 어르신 흉내를 낸다. 스페인에 가면 플라맹고를 보라고 누군가 그랬다는 데, 한 번도 볼 여유나 겨를이 없었다며 농담 섞인 신세한탄을 한다. 누군가에게 음식은 내놓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곳에 가서도 그 곳을 둘러볼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그것 때문에 그저 여행자가 아닌 그 곳의 일상인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 곳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그러할 것처럼, 아주 가끔 시간을 내서 찾아간 정통 이탈리아식 음식점에서 먹는 피자, 파스타, 샐러드의 맛이 더 남다르고, 오전 시간을 잠시 내어 둘러보는 풍광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낯선 설렘과 익숙한 따뜻함. 아마도 <윤식당>이 남다른 행복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두 코드 사이의 균형 때문일 게다. 처음에는 낯선 설렘이었던 가라치코 사람들은 어느새 익숙한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잠시 벗어난 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풍광이 주는 또 다른 설렘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시청자들도 가라치코 사람들이 낯설지가 않다. 외국인이라면 갖게 되는 막연한 낯설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자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그들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은 친밀함을 준다. 한국에서 반 년 간을 일했다는 한 외국인이 ‘김연아’를 얘기하고, ‘김치’를 말하는 그 얼굴 속에서 그 역시 한국생활에서 느꼈을 낯선 설렘과 익숙한 따뜻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새 가라치코를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이건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힘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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