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할까요’, 로맨스 어벤져스 군단의 섬세하고 유쾌한 놀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로맨스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배유미 작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아니다. 대신 정통적인 로맨스 구도에 1990년대의 발랄한 감각이라 할 수 있는 언어유희의 대사를 얹는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배유미 작가는 수많은 히트작을 썼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작가들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들과 배유미 작가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배유미 작가는 감정의 지뢰를 이야기에 숨겨둘 줄 안다는 점이다. 그 지뢰가 어떤 것인지 극 초반의 발랄한 상황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지뢰는 극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실체를 드러내며 후반부에 이르면 먹먹한 폭발을 연달아 일으킨다.

그녀의 히트작들은 대개 그랬다. 청승맞은 아줌마의 일상생활 같던 <12월의 열대야>는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쏙 빼는 사랑 이야기로 변해갔다. 여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남고생이라는 가벼운 설정의 학원물로 보였던 <로망스>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깊이 있는 로맨스물의 미덕을 잘 갖춘 작품으로 발전해갔다.



그녀의 최근작인 SBS 주말드라마 <애인 있어요> 역시 이런 미덕을 보여준 드라마다. 극 초반 도해강(김현주)을 버린 남편 최진언(지진희)은 국민 ‘쌍놈’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이 최진언은 도해강만 바라보는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변해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배유미 작가가 그리는 로맨스에는 먹먹함의 지뢰가 터지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현재 방영중인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아직까지 그 먹먹함의 지뢰가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간간이 짧게 들어가는 6년 전 두 남녀주인공의 우연한 만남 장면을 통해 그 먹먹함의 사연을 유추할 수 있을 뿐.

<키스 먼저 할까요?>는 빚더미를 짊어지고 사는 이혼녀 스튜어디스 안순진(김선아)과 한때 유명한 카피라이터였던 괴팍한 이혼남 손무한(감우성)의 두 번째 사랑 이야기다. 이 둘은 6년 전 자살시도한 안순진을 손무한이 구해준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허나 이 둘의 사랑은 6년 전과는 달리 수많은 오해로 얽혀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초반부에 안순진이 손무한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면서 로맨스가 아닌 섹스어필로 유혹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로맨스물이지만 정작 아직까지는 서로의 감정과 감정이 오가는 로맨스가 시작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런 초반부의 구도에서 이 작품은 배유미 작가 작품답지 않게 어쩌면 다소 느끼하고, 민망할 법한 19금의 대사들이 터져 나온다. 또 어떤 면에서는 이제는 다소 식상해진 언어유희나 로맨스 구도를 다루면서 굳이 왜 이런 설정을 지금에서 반복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제는 마흔에 접어든 1990년대 신세대였던 중년의 새로운 사랑을 다루는 작품의 성격답게 뭐 그러려니 싶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과하거나, 너무 나갔다 싶은 장면들이 못생긴 못처럼 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이런 과한 욕심이 생각보다는 부담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또 다른 로맨스 드라마계의 장인인 배우 감우성과 김선아가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배우는 단순히 미남 미녀라서 로맨스물의 장인이 된 것은 아니다. 이 두 사람은 캐릭터를 그릴 줄 알고,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어낼 줄 알고, 더 나아가 캐릭터의 수위를 조정할 줄 아는 배우다.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사실 현실의 로맨스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감정을 흔들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로맨틱해 보이는 것이. 그렇기에 작가가 너무 과장해서 만들어낸 장면들도 이 배우들은 부드럽고 편안하게 소화시킬 줄 안다.

그런 까닭에 김선아의 안순진은 종종 과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청승맞거나 민망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김선아의 수줍음과 쓸쓸함을 오가는 연기 덕에 안순진은 코믹하면서도 사연이 궁금해지는 인물로 탄생한다.



감우성이 보여주는 손무한 역시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아저씨와 로맨스의 남자주인공 사이를 재빠르게 오갈 수 있는 남자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로맨틱 가이를 현실적인 인물로 섬세하게 조탁하는 남자배우도 흔치 않다. 그리고 지하철 설정의 모텔 안에서 개목걸이를 차고 있으면서도 로맨틱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이처럼 작가와 남녀 주연배우 세 명의 ‘로맨틱 어벤져스’ 팀이 모였으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적인 로맨스의 시작 없이도 보는 이의 심장을 잡아끄는 로맨틱 자석의 힘이 있다. 흔히 코믹하거나 여과 없이 야하기만 한 모텔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싹 뜨는 장면을 인상 깊고 상큼하게 만들어낸 능력만 봐도 그러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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