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단순한 농촌 판타지로 소비해선 곤란한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이다. 원작은 만화가 아가라시 다이스케가 도호쿠 지방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했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생활만화로,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한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계절에 따라 1, 2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2015년에 한국에서 차례로 개봉되었다. 별다른 서사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자연과 요리과정을 느리게 보여주었던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잔잔한 휴식을 안겨준 영화로 남아있다.

이번에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판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단 한국의 사계를 풍광에 담다보니 일본판과 그림이 다르고, 요리의 메뉴가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더 두드러진 변화는 따로 있다. 2편으로 만들어졌던 원작과 달리 1편에 사계절을 모두 담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속도나 자연을 음미하는 정적인 장면이 훨씬 압축적으로 변화됐다. 또한 조연을 맡은 친구들의 비중을 늘어나서 화기애애하고 때로는 왁자한 느낌을 준다.



◆ 소울 푸드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다

혜원(김태리)은 임용고시에 떨어진 후 고향집에 돌아온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며 떠났던 고향이다. 엄마(문소리)와 둘이 살던 혜원은 대학만 붙으면 집을 떠나겠노라 큰 소리를 쳤지만, 엄마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수능시험 직후 엄마가 먼저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아빠의 고향이었다. 도시에서 살던 혜원 엄마는 혜원이 어렸을 때 남편의 요양 차 이곳에 내려왔고, 남편이 죽은 뒤에도 이곳에 남아 혜원에게 별별 요리를 가르치며 살았다.

혜원이 눈 덮인 시골집에 들어가 불을 지피고, 조금 남은 쌀로 밥을 짓고, 밀가루로 수제비를 끓인다. 왜 왔냐는 친구의 말에 혜원은 “배가 고파서”라 말한다. 노량진 포장마차의 컵 밥이나 팔고남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쌓아온 영혼의 허기를 혜원은 엄마에게 배운 소울 푸드를 요리하며 채워간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막걸리, 시루떡, 떡볶이 같은 한국적인 요리 뿐만 아니라, 파스타나 크렘 브륄레 같은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요리도 등장시키며, 혜원이 고향에서 보내는 느린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마치 <삼시세끼>, <윤식당>, <효리네 민박> 등의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주듯이, 일상의 평화로움과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담는다. 그리고 가끔씩 자연 에세이를 읽는 듯한 통찰이 담긴 대사로, 지치고 공허한 내면을 일깨운다.



가령 “토마토는 다 먹고 꼭지만 땅에 던져 놔도 싹이 트는데, 그것은 꼭 한여름 햇볕을 잘 받고 완숙된 토마토여야 한다”는 혜원 엄마의 말은 사랑에 대한 비유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의 아빠와 충분한 사랑을 나누었기에, 그 사랑이 끝난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사랑을 싹틔울 수 있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혜원의 엄마가 아빠가 죽은 뒤에도 혜원을 그곳에서 키운 이유는 혜원이 고향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바랐기 때문이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빛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음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라는 말처럼, 혜원이 도시에서 힘듦과 외로움을 겪더라도 단단한 자기중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보고 일으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 생활의 실패를 안고 떠밀리듯 내려온 혜원과 달리 자기 확신을 가지고 귀농한 재하(류준열)도 여러 가지 비유로 메시지를 전한다. 혜원에게 강아지를 건네며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고 말하거나, 선택과 결단을 미루고 있는 혜원에게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니?”라 말하는 재하는 은근한 통찰을 드러낸다.



◆ 농촌 판타지로 소비되지 않기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에서의 삶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낭만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동네에서 엄마 험담을 하는 등 농촌 커뮤니티의 답답함을 짧게나마 집어넣고, 풍수해를 입어 힘들여 지은 농사를 망치는 것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또한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은숙을 통해 “여긴 포근하지만 진짜 답답하다.”는 말도 들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구체적인 농촌에서의 삶이 아닌 이미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임순례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일본판과 달라진 것에 대해 “한국적 상황을 고려했다. 엄마가 가출을 하는 시기도 원작과 달리 딸의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로 늦추었는데, 이는 한국 관객들의 납득을 돕기 위함이었다. 또한 젊은 여성 혼자 시골집에 내려가 사는 상황을 한국에서는 위험하다고 느낄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관객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가까이에 고모가 살고 계시다거나, 친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설정으로 조연의 비중을 늘렸으며, 원작의 고양이를 큰 개로 바꾼 것도 든든해 보이기 위함이었다.” 라고 밝혔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실제 농촌에서 젊은 여성 혼자 사는 것이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며, 영화가 그린 혜원의 일상은 면밀한 조율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가령 혜원의 일상에서 친구들이 없다면 적적할 것이고, 엄마로부터 세련된 요리기술을 전수받지 못했다면 혜원의 삶은 그처럼 풍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영화가 보여주는 혜원의 농촌 생활은 잘 조율된 일종의 판타지이다. 무엇보다 혜원이 농촌에서 보낸 한 해 동안 자립 경제를 이루었다고 할 수도 없으니,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로 보기 힘들다.

영화가 리얼리즘이 아닌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을 위한 판타지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는 도시의 바깥에 농촌에서의 삶도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즉 도시에서의 각박한 삶이 전부가 아니며, 조금 쉬어가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농촌에서의 슬로우 라이프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돌아갈 곳이 있다. 제대로 먹고 제대로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것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예컨대 서부영화가 미국인들에게 표표히 사라질 황야가 있음을 말해주었듯이,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남쪽으로 튀어><리틀 포레스트> 등이 한국의 도시민들에게 언제든 돌아갈 시골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촌향도가 끝난 뒤의 세대들이기 때문에 돌아갈 고향이 없다. 혜원처럼 ‘농촌에서 단단하게 뿌리가 박힌 채 키워진’ 사람은 오히려 극소수이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농촌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이다. 농촌은 집단의 무의식 속에서 재구성된 고향일 뿐 나의 고향은 아니며, 오히려 매우 낯선 곳이다. 영화는 혜원의 고향을 이상화된 장소로 그리며, 당신도 이런 휴식 같은 삶을 살거나 꿈꿔보라고 권한다. <삼시세끼>나 <윤식당>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누구나 안다. <윤식당>이 실제로 운영하는 식당은 아니라는 사실을.



<리틀 포레스트>가 귀농을 대안적 삶으로 제시하는 영화로 읽히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 그보다는 혜원이 고향에서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았듯이, 나의 작은 숲은 어디에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는 화두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당신의 작은 숲은 어디인가. 그곳에도 계절마다 꽃과 열매와 제철 음식들이 가득한가. 이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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