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의미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4일(현지 시각)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있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작품상을 포함한 네 개 상을 받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기술부분에서 세 개를, 조 라이트의 <다키스트 아워>와 마틴 맥도나의 <쓰리 빌보드>가 각각 주연상을 포함해 두 개 부분의 상을 수상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업계 사람들의 인기투표인 이 시상식의 의도를 꼼꼼하게 읽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 날 상을 받은 영화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인정을 받게 될지 역시 또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막 시상식이 끝난 지금 보았을 때 이 결과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셰이프 오브 워터>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몬스터 영화라는 것이다. 이는 이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호러영화이며 SF영화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작품상을 받은 영화 중 이만큼 노골적인 장르영화는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밖에는 없었다.

장르를 접고 보더라도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사람들이 보통 아카데미 작품상에서 기대하는 안전한 주류의 정서가 없다. 반대로 영화는 ‘미국인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정상성’이라는 허구를 대놓고 조롱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 편은 장애인 여성, 남미에서 잡혀온 물고기 인간, 흑인 여성, 중년의 동성애자 남성, 소련 스파이이고 극단적인 괴물로 그려지는 악당은 바로 ‘미국인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다. 같은 관점은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각본상을 가져간 호러 영화 <겟 아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시상식 리스트가 최근 창작자들의 고민과 지향성에 인기투표가 수동적으로 휩쓸려 간 결과라면 시상식은 업계 사람들의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미투의 시대이고 사회자 지미 키멜의 오프닝 모노로그부터 바뀌기 시작한 업계의 생태와 환경을 반영했다. 이는 “남자들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말아먹은 탓에 여자들이 물고기와 데이트하기 시작한 해”라는 농담으로 압축될 수 있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모든 여성들을 기립시키고 그들의 연대를 선언했다. 이 수상소감은 교육적이기도 했는데, 맥도먼드 덕택에 수많은 시청자들과 업계 사람들이 ‘inclusion rider’가 배우의 계약서에 여성과 소수자를 촬영장에 일정 비율 이상 포함시키는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저번 남우주연상 수상자 케이시 애플렉이 관련된 성범죄 논란 때문에 여우주연상 시상을 포기했고 그 역할을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렌스가 맡게 된 것도 기억할만 하다.

LGBT의 자연스러운 가시화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판타스틱 우먼>은 트랜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였고 주연배우 다니엘라 베가는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선 최초의 트랜스젠더 배우였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령 경쟁부분 수상자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색자 제임스 아이보리(89세이다), <코코>의 제작자 달라 K. 앤더슨과 공동 감독 아드리안 몰리나 역시 모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다. 기혼자인 앤더슨과 몰리나는 모두 소감에서 자신의 배우자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델 토로가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소위 ‘쓰리 아미고스’라고 불리던 멕시코 감독 3인방 (델 토로,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모두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13년 이후 쓰리 아미고스를 제외한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사람은 <라라랜드>의 데미안 채즐뿐이다.

시상식 기조는 전반적으로 미국 영화업계의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지만 과거 역시 잊지 않았다. 의상상 후보를 발표하러 나온 93세의 이바 마리 세인트가 알프레드 히치콕을 ‘프레드’라고 부르며 <워터프론트>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의상과 이디스 헤드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부분은 거의 초현실적이었다. 외국어 영화상을 시상하러 나온 리타 모레노는 반 세기 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입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과물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올해도 연기상 수상자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여성창작자의 예찬과 연대가 주를 이었지만 이를 대표하는 <레이디 버드>는 무관으로 돌아갔다. 단편 애니메이션 <마이 배스킷볼>의 제작자 코비 브라이언트가 2003년 강간사건의 피의자였다는 사실은 #미투로 대표되는 이번 시상식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셰이프 오프 워터><겟 아웃>스틸 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