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가 장르 속 캐릭터들의 클리셰를 깨려는 이유는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새 주말드라마 <라이브>의 첫 시퀀스는 눈 오는 날 시위현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우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배가 고픈 듯 허겁지겁 식판의 밥을 뜨는 염상수(이광수)는 거기 한 켠에서 역시 밥을 먹는 한정오(정유미)와 살짝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게 됐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한정오는 자식의 전화를 받고도 그런 사람 모른다며 끊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열심히 보험영업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남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상 앞에서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찾아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으로 돈을 요구하고, 그 돈으로 경찰시험을 준비해 경찰이 된다.



염상수 역시 비정규직 건물 청소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약국의 재고정리까지 도와주며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호주로 도망치듯 나가버린 형과 함께 살아오며 어떻게든 취업을 하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자신이 정규직이 되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회사가 사실은 사기 기업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절망하던 차에 마침 벽보에 붙어 있던 경찰공무원 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고시원생활을 통해 겨우겨우 그는 경찰시험을 통과한다.

흔히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은 ‘힘겨워도 나름 재밌게 살아가는’ 이른바 ‘청춘로맨스’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짠내 나도 ‘청춘이기 때문에’ 밝고 나름 달달한 모습들이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지금의 청춘들의 모습일까. <라이브>가 비추는 청춘의 초상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모집공고에 내걸었으면서 실제로는 스펙 타령만 하고 아예 남성 취업자들만 뽑겠다는 식으로 여성들을 제외시키는 채용관들 앞에서 한정오는 무력감을 느낀다.



면접 뒤에 함께 모여 술자리도 갖는 같은 처지들이지만 거기서도 남성과 여성이 그 성차별적 면접 분위기를 놓고 싸운다. 그건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그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정오는 스펙이 아닌 실력만으로 뽑는 경찰 공무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합격했다고 그것으로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중앙경찰학교 안에서도 경쟁에서 누락되어 탈락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 그래도 이 악물고 그 경쟁을 버텨내려 한다.

역시 부도를 내고 도망친 회사에 정규직을 희망했던 염상수는 그 절망의 끝에서 경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한정오나 염상수나 한가롭게 연애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 짐은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 그래서 이 청춘들의 자화상은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 속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클리셰 깨기는 청춘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애초 드라마 시작점에 보여줬던 경찰들의 면면이 진짜 이 드라마가 깨려는 클리셰다. 우리게 경찰이란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 앞에 방패를 들고 막아서던 이른바 ‘공권력’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심지어 철거현장에서 살기 위해 그 곳을 점거하고 있는 서민들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비정한 존재들로까지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늘 뒷북을 치는 무능함의 상징처럼 그려온 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속 경찰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까. ‘공권력’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그들은 마치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까지 여겨지지만, 사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어쩌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불의한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지, 그걸 감수해야 하는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오히려 살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그 무수한 딜레마 속에 서 있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라이브’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미지로만 그려져 왔던 실제와는 다른 그런 모습과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드라마의 다짐이 이 제목에 담겨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마지막 현장투입의 시험대에 들어가는 이들 청춘들에게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상관은 “아무 것도 하지마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때리면 맞고 밀고 들어와도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손을 부르르 떤다. 우리가 생각했던 ‘공권력’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진짜 모습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