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사랑을 했다’, 자꾸 귓가에 맴도는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빅 히트곡들은 대부분 훅치고 들어오는 훅으로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다. 원더걸스의 <텔 미>나 소녀시대의 <지>, 세계를 한 바퀴 돌며 휩쓴 싸이의 <강남스타일> 트로트와 EDM의 조합으로 시대를 거스르는 역주행의 신화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까지 모두가 그렇다.

지금까지는 2018년 최대 히트곡이라 부르기 충분한 IKON의 <사랑을 했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했다>에는 모든 세대를 초월해서 훅 치고 들어오는 훅이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노래는 그 훅이 노래의 절정부가 아니라 전주도 없이 B.I가 깔랑깔랑하게 부르는 시작부터 한방에 들어온다.

<사랑을 했다/우리가 만나/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사랑을 했다>는 시작부터 노래가 품고 있는 모든 멜로드라마를 단숨에 설명해 준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이 안에 이 노래가 품고 있는 모든 시나리오가 다 읽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거면 됐다.



흥미롭게도 이 이별 노래는 쓸데없이 격정적이거나 과하게 처절하지 않다. 쿨하고 솔직담백해서 매력적이다. 지나간 연인과의 사랑을 회상하기 위해 우주나 지옥불이 등장하거나 알아먹지 못할 현란한 가사들과 요란한 영어 랩이 뒤섞이는 것도 아니다. 갈비뼈 사이가 찌릿찌릿한 느낌과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눈빛이면 사실 사랑에 대한 가사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사에 어울리는 멜로디는 중간 중간 랩과 절정부로 치고 올라가는 순간이 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담담하다. 비트 역시 지나치게 소박할 정도여서 듣는 이의 귀와 가슴을 톡톡 노크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 담담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지루하기보다 무언가 이해하기 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귓가에도 맴돌고, 머릿속에도 맴돌고, 입술에도 맴돌아 결국 웅얼거리게 되는 노래인 것이다.

그들의 퍼포먼스 역시 이 심플함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다. <사랑을 했다>에서 iKON의 무대는 바로크가구처럼 현란하지는 않지만 IKEA 가구처럼 심플하고 간결한 매력이 넘친다. 복잡한 곡예 같은 동작은 없지만 절도 있으면서도 간결하고 은근히 풋풋함도 있는 무대는 보는 이의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멋진 퍼포먼스를 위해 현란하게 만들어진 노래도 그 자체로 매력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했다>는 우선 귀에 감기고 흥얼대기 쉬운 노래가 있고 그 노래를 위한 아이돌의 퍼포먼스가 존재하는 셈이다. 열정적인 팬덤을 모으기에는 전자의 방법이 좋지만, 대중들의 귀를 통해 널리 퍼지기에는 후자의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또 하나 빅 히트곡들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한 요소를 품고 있어야 한다. <사랑을 했다>는 심플하고 담담한 노래지만 동시에 남녀 모두에게 추억의 실로폰을 울릴 만한 감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랑을 했다>는 노래 중반부 구준회가 탁하고 묵직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똑같은 훅을 부르면서 또다시 느낌이 달라진다. 담담함 속에 지난 사랑을 말하던 노래에 어느 순간 쓸쓸한 감수성이 묻어나는 것이다. 더불어 남자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남자들의 감성을 그대로 옮긴 듯한 노랫말 덕에 이 곡은 남자의 가슴에도 쉽게 들어온다. 남성들 역시 오랜만에 남자 아이돌의 노래에 감정이입할 만한 요소가 충분한 노래인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의 후반부 Bobby를 통해 다시 한 번 첫 소절이 반복되면서 <사랑을 했다>는 또 다른 느낌으로 끝난다. Bobby 특유의 자유로운 느낌 때문에 이 이별 노래의 뒷맛은 독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난 뒤의 느낌처럼 깔끔하고 기분 좋다. 심플한 멜로디의 노래 한 곡에서 사랑의 느낌, 이별 후 지난 추억의 아릿함, 그 이후 이별 이후 삶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까지 모두 묻어 있는 노래는 흔치않다. 이러니 신드롬을 형성하며 40일 넘게 음원차트의 정상에서 터줏대감처럼 머물렀던 히트곡일 수밖에.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YG 엔터테인먼트,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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