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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온도’, ‘썰전’·‘블랙하우스’ 틈새 공략을 위한 조언
기사입력 :[ 2018-03-17 14:00 ]


‘판결의 온도’, 사법 판결을 내 일처럼 다가오게 하기 위해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파일럿 예능 <판결의 온도>를 보다보니 새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방송에서, 신성하다 마지않을 법원의 판결을 의아해하며 국민의 법감정을 내세워 재평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방송이 사법 판결에 태클을 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를 이뤄낸 오늘날 국민 주권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수 년 전 <썰전>이 정치이슈를 예능에서 전면적으로 다루고, 방송이 스스로 방송 이야기를 하며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것처럼 <판결의 온도>는 이미 끝난 사법 판결을 방송으로 가져와 토를 달고 물어뜯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요즘은 여론의 이목이 쏠리는 사건의 경우 판사의 이름과 신상, 성향 관련 키워드가 ‘실검’에 오르내리고, 지난 삼성 재판에서처럼 판사가 언론을 통해 자기반론을 하는 시대이니, 탄핵 이후 바뀐 풍경에 보조를 맞춘 셈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시사토크쇼 등에서도 몇몇 사회적 논란이 되는 재판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이나 논쟁을 벌여오긴 했었다. 하지만 사법 판결만을 전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금기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첫 회에서는 지난해 한 매체에서 최악의 판결로 꼽은 바 있는 ‘2400원 횡령 버스 기사’ 사건을 소환했다. 17년간 아무 문제없이 근무하던 버스 기사를 단돈 2400원을 횡령했다며 해고한 사측과 이에 대한 억울함을 피력한 버스 기사간의 3심까지 간 법정 공방은 사측의 승리로 끝났다.

<판결의 온도>는 버스기사의 2400원이 횡령이 맞는지, 실사 횡령했다손 치더라도 즉각 해고를 하고 3심까지 법정공방을 벌이는 게 맞는지, 때로는 상식과는 동떨어진 모호한 사법 정의, 법리 해석, 사회적 통념이나 형평성과는 어긋나는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따져본다. 판결문의 ‘입장’과 법리적 해석을 대변하는 판사 출신 신중권 변호사와 사회적, 경제적, 인문학적, 외국인의 입장 등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주진우 기자, 진중권 교수, 이진우 경제전문가, 이정렬 전 판사, 다니엘, 알베르토 등의 패널이 갑론을박을 주고받는다.

우선 사법 판결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는 자체부터 속이 시원해진다. 세상사와는 동떨어졌지만 기득권 권력집단과는 매우 밀접하다는 평을 받는 사법 당국을 성역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가장 먼저 든다. 그리고 우리 일상 언어와는 다소 다른 듯한 법리의 세계, 소송의 생리 등 법 지식과 소송 전략과 관한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로써의 기능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에 댓글을 다는 것 이외에 보다 건설적인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궁극적으로 법정서와 실제 법리의 간격이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품게 한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시도인 만큼 파일럿이 풀어갈 숙제도 눈에 띈다. 사법 판결을 방송 콘텐츠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며 감정을 나누고 국민 정서를 녹이냐는 거다. 한때 소송가액이 170억 원에 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법 활극』까지 펴낸 주진우 기자의 존재가 열선이긴 하다. 그는 방송 중 버스기사가 받은 처벌과 재벌들의 선처를 놓고 형평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따진다. “삼성 앞에서 법이 삐뚤어졌다.”거나 롯데가 삼성을 바라보며 느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이야기 등이 정서적으로 와 닿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목이 집중된 현재 진행 중인 사안, 특히 우리 사회 기득권층과 관련된 복잡한 뇌물수수, 경제사범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렵고, 이번 방송의 경우 사안의 핵심은 아니다.

그런데 <판결의 온도>가 편성된 목요일만 해도 <썰전>과 <블랙하우스>는 현안을 이야기한다. 검찰 조사를 받은 이명박, 재판을 받은 삼성 등 시시각각으로 변화상을 추적하며 때로는 쓴 소리를 쏟아낸다. 이렇다보니 다소 어렵고 먼 재판 이야기에 더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썰전>이나 <블랙하우스>보다 자극적인 이슈를 다루거나 혹은 조금 무거워지더라도 이 프로그램만의 특성과 가치를 갖춰야 할 필요가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강의처럼 판결문을 쉽게 풀어주는 명쾌한 해설이 한 가지 안이 될 수 있다. 판결문에 담긴 법리가 어떤 식의 법적공방과 논리를 바탕으로 이뤄졌는지 추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사 법적 공방을 펼치는 듯 논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여타 시사예능에서 많이 봐온 토크쇼와는 또 다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토크쇼의 재미와 가치 또한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제3자 입장에서 재판은 굉장히 지루한 일이다. 사법 관련 이슈를 내 일처럼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서 판결은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은 사건이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제를 건드려야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시청의 행위가 지적 호기심,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등 실제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필요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타 예능에 비해 무거운 시사교양국의 예능을 시청자들이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썰전>이 정치 이외에 함께 진행했던 방송연예, 경제 부분이 특별히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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