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발로 달려도 발바닥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과연 맨발로 42.195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맨발 풀 코스는 처음인데.’

‘문제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연습 때 두 차례나 30km 넘게 달렸지만 발바닥이 따끔거리는 증상 외에는 탈이 나지 않았잖아.’

잠실종합운동장 앞길. 출발 전 워밍업하면서 밟는 아스팔트 바닥이 따갑다. 불안과 자신이 번갈아 드나든다.

맨발로 주로(走路)에 나선 뒤에도 그렇게 흔들렸단 말이야? 몸은 정직하다며? 하물며 맨발로 풀 코스를 뛰는 일에 충분한 준비와 확신이 없이 나섰단 말이야? 나는 이런 힐난을 들을 만했다.

앞서 풀 코스를 맨발로 달리기로 한 결정은 즉흥적이었다. 나는 사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맨발로 뛰도록 하기 위해.

“백우진입니다. 이번 대회에 사내 참가자 완주 사진 화보로 싣나요? 네, 이번에도 참가하는데요. 열일곱 번째 풀 코스죠. 제 사진 캡션은 좀 길게 써주실래요? 맨발로 뛰거든요.”

사보 기자가 관심을 갖는다. 그는 왜 맨발로 뛰는지 취재한 뒤 대회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주사위를 던졌고 루비콘 강을 건너’ 풀 코스 대회 출발선에 섰다.

독일 외무장관을 지낸 요시카 피셔는 <나는 달린다>를 썼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나는 맨발로 달린다>고 써야지. 그럼 나는 왜 맨발로 달리는가. 상세한 얘기는 월간중앙 10월호에 이미 썼다.

그 기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맨발인지 아닌지는 표피적인 문제다. 핵심은 피부가 땅에 닿는지가 아니라 맨발로 달릴 때와 같은 원리로 몸을 움직이느냐다. 예컨대 맨발과 비슷한 조건을 제공하는 ‘미니멀리스트 신발’을 신고 달리면 맨발 달리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미 샌들 형태의 미니멀리스트 신발을 장만한 뒤였다. 그런데도 굳이 맨발로 달린 이유는 무엇인가. 홍보를 위해서였다. 샌들을 신고 뛰면 사람들의 관심이 샌들에 맞춰진다. 화제를 맨발로 끌고 가기 어렵다. 맨발 달리기의 좋은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난 샌들을 신지 않기로 했다. 양말도 신지 않기로 결심했다. (두 주 전 춘천마라톤에서는 양말을 세 겹 신었다.)

홍보의 첫 단계는 관심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그도 내게 눈길을 준다. 관심 받고 싶어서, 나는 이번에 달리면서 어느 대회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70대마라톤 동호회 회원을 지나치면서는 “형님 파이팅”, 청주에서 온 참가자에겐 “청주 파이팅”하며 말을 건넸다. 중앙마라톤 소식지에 기고한 참가자에게도 인사했다.

대개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와, 맨발로 달리시네요. 발바닥 괜찮아요?” 응원하러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 가운데 많은 분들도 맨발로 뛰는 나를 격려해 줬다.

맨발로 뛸 때 가장 많이 듣는 걱정이 발바닥이다. 그 다음이 무릎 관절이고. 맨발 달리기 바람이 처음 일어난 미국에서도 기사에 꼭 등장하는 코멘트가 ‘발바닥 부상 주의’다. 예컨대 전미(全美)족부의학협회는 다음과 같은 주의 성명을 냈다.

“맨발 뛰기에 관한 연구 결과는 더 심도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 도로 위의 여러 잔해로 발바닥 상처를 입거나 다리 아래쪽에 큰 충격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나는 반박할 자격이 있다. “맨발로 뛰어봤어? 나는 해봤다.” 나는 8월 15일부터 맨발로 달리는 연습을 했다. 발바닥은 물집 한번 잡혔을 뿐 아무 탈도 나지 않았다.

그럼 발바닥에 못이나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맨발 달리기의 본질에 닿는다. 못이나 굳은살은 왜 생기나?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과도하게, 또는 그 용도와 다른 곳에 반복해서 사용하면 생긴다. 예컨대 연필을 잡을 때 닿는 손가락 부분이 딱딱해진다. 하지만 발바닥은 원래 달릴 때 땅에 직접 닿도록 만들어진 부위다. 또 사람 몸은 장거리를 달리게끔 설계됐다. 따라서 장거리를 맨발로 달려도 발바닥이 딱딱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보된 대로 가을비가 내렸다. 나쁘지 않았다. 바닥을 흐르는 빗물이 평소보다 몇 배의 열을 받을 발바닥을 식혀주겠다고 기대했다. 실제로 발바닥이 마찰열을 덜 받은 듯했다.

맨발로 달린 다음부터 내가 샤워할 때마다 하는 짓이 있다. 욕조 바닥솔로 발바닥을 싹싹 닦는 일이다. 발바닥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작은 의식이다. 이번 풀 코스를 완주하고 나서도 발바닥은 말짱했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말랑말랑해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이번 완주로 나는 맨발 달리기에 확신을 갖게 됐다. 신발 신고 달릴 때에 비해 주법이 가다듬어짐을 체감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개인기록을 경신하는 일이다. 맨발 달리기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고, 특히 잘 달리는 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맨발 마라토너’ ‘아베베의 후배’로 이름을 알린 다음엔 뭘 하지? 그렇게 되면 여러 신발회사에서 경쟁적으로 모델로 서 달라고 제안하지 않을까? 맨발로 달리던 아무개가 고집을 버리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러닝화라는 광고를 하자면서? 그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원칙을 포기하고 실리를 택해야 하나?

달리면서 하는 몽상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기록은 냉정하다. 내심 네 시간 안에 들어올 것을 기대했지만, 기록은 네 시간 6분에 그쳤다. 갈 길이 멀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중앙서울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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