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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이이경을 통해 본 ‘가즈아’ 세대의 아이러니
기사입력 :[ 2018-03-27 17:36 ]


‘으리차차’, 배꼽 잡는 이이경이 문득 서글프게 보인다는 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이준기(이이경)는 2005년 <왕의 남자>와 CF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의 스타 이준기와는 극과 극으로 다르다. 2천 년대 중반에 영화 <왕의 남자>로 스타덤에 올라선 이준기는 순정만화의 중성적이고 매니악한 꽃미남 캐릭터가 현실 세계로 나타난 흥미로운 경우였다.

반면 <으라차차>의 단역배우 이준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실 속 청년이 시트콤 같은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경우다. <왕의 남자> 이후 승승장구 했던 현실 속 배우 이준기와 달리 시트콤 속의 이준기는 만년 단역배우다. 잘생겼지만 특별한 아우라는 없는 <으라차차>의 이준기는 단역보다 한 단계 위인 조연 자리라도 꿰차려고 늘 아등바등한다.

이 이준기는 짝퉁 울버린도 되었다가, 주연배우에게 얻어맞는 조폭1도 되었다가, 심지어 문어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으라차차>는 배우 이이경과 캐릭터 이준기가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이준기가 단역배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겪는 과정들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울버린으로 분장한 이준기는 슬프게도 버스 손잡이를 잡지 못한다. 혹시라도 비싼 가격에 특수 분장한 손톱이 망가지면 감독에게 엄청나게 깨지고 역할에서도 쫓겨날 지경에 처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매기치 당한 지갑을 찾으러 경찰서에 갔다가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한다. 울버린으로 분장한 얼굴의 분장을 지울 수도 없고, 손톱을 떼어낼 수도 없고 지문을 찍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으라차차> 매 회차마다 이준기는 고생에 고생을 거듭한다. 그는 잘 나가는 마초 스타배우의 제스처와 표정만 보고 모든 감정을 다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중에는 이 스타배우와 화장실에서 만났다가 제스처를 오해해 그에게 키스했다 촬영장에서 쫓겨난다. 그 뿐이 아니다. 연기파 여배우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찍으면서 그녀의 콧물까지 입으로 받아내는 ‘액박이’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준기의 고생담은 <으라차차>가 보여주는 코믹함의 대들보와 다름없다. KBS <고백배우>부터 색깔 있는 코믹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이경은 <으라차차>에 드디어 인생캐릭터 이준기를 만난 듯하다.

더구나 이 명랑만화 같은 캐릭터 이준기는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였던 고 구봉서의 흑백 코믹영화 속 주인공들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들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 <으라차차>의 청년 이준기는 어쩌면 가래 끓는 목소리로 ‘가즈아’를 외치는 21세기판 구봉서인 셈이다.

하지만 20세기의 구봉서가 ‘하면 된다’ 세대의 코미디를 보여줬다면 21세기의 구봉서인 <으라차차>의 이준기는 ‘가즈아’ 세대의 코미디를 그려낸다. ‘하면 된다’ 세대는 팍팍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하면 된다’를 신봉한다. 더구나 전후세대였던 1960, 7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하면 된다’는 믿음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좁은 길이 고속도로 바뀌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적었던 시대였다. 즉 실제로 누구나 열심히 하면 상대적으로 성공하기 쉬웠다. 구봉서의 영화 속 풍경이 가난하지만 그 주인공들의 웃음에는 인간적인 여유가 넘쳤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물론 그 지난 시절 성공신화의 결과물 중 하나가 이명박 전 대통령 ‘가즈아’ 교도소라는 건 다소 씁쓸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이 외치는 ‘가즈아’는 ‘하면 된다’와는 맥락이 좀 다르다.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어디를 가든 성공을 위한 도로는 만원이다. 그들은 그래서 ‘비트코인’처럼 기존과 다른 활로의 투자에 재빠르게 우르르 뛰어든다. 위험한 길이지만 막히는 길보다는 지름길이 더 가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설령 그 지름길 끝에 천국이 아닌 한강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은.

결국 북적북적한 그들이 외치는 ‘가즈아’는 ‘하면 된다’ 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갈 수 없는 지금의 공포를 웃음 섞인 허세로 타개하려는 서글픈 외침이이기도하다. ‘가즈아’의 뒤에 끝까지 버티자는 ‘존버’가 서글픈 원 플러스 원처럼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으라차차>의 배꼽 잡는 이준기가 어느 한 순간 문득 서글프게 보이는 것도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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