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후유증을 통해 방송사들이 상기해야할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MBC는 사장이 바뀌었고 파업도 끝났지만 지난 10년 세월이 만들어낸 후유증은 여전히 만만찮게 남았다. 부단히 과거와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 체제로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눈에 보이지만, 정상화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 후유증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분야는 역시 드라마다. 지난 몇 개월 간 새로운 드라마의 라인업 자체가 세워지지 않아 <하얀거탑>을 재방송했던 MBC는 최근 월화에 <위대한 유혹자>를, 수목에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를 편성했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2-3%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대한 유혹자>가 2%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건, 드라마가 기획적으로나 완성도 면에 있어서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청춘남녀의 멜로, 그것도 재벌 2세들의 로맨스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줄 수 없다는 게 이 드라마의 맹점이다. 물론 만듦새 또한 산만해서 첫 회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가늠하지 못해 채널을 돌렸다는 반응들이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충분한 사전 기획과 준비기간이 담보되지 못한 느낌이 짙다.

하지만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가 부진한 건 작품의 문제라기보다는 MBC 채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생겨난 결과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이 작품은 불륜 설정으로 읽히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중년부부가 처한 삶에 대한 불안감을 섬세한 필치로 다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섬세함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법이다. 일단 채널로 시선이 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저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보지 않고도 오인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륜 설정이나 재벌가 이야기가 소재로 들어가면 또 다시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치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년 간 이어진 파행으로 인해 MBC 채널 자체를 잘 보지 않게 된 결과가 만들어내는 후유증들이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무한도전>을 빼고는 MBC를 보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볼멘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았던가.

지난 10년 간 MBC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과거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명성에는 맞지 않는 행보를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특히 주말드라마 시간대에 공격적으로 포진된 클리셰 드라마들은 MBC드라마가 오래도록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일궈왔던 브랜드에 상당한 생채기를 냈다. 그래서 괜찮은 드라마가 새롭게 편성되어도 오인되거나 혹은 찾아보지 않게 되는 결과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드라마는 본래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어야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즉 지금부터 변화를 도모한다고 해도 1년 후에나 그 성과들이 겨우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MBC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일 수밖에 없다. MBC가 뉴스에서부터 드라마, 예능까지 최승호 사장을 필두로 새롭게 시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실로 지난 잃어버린 10년이 가져온 엄청난 후유증을 MBC는 물론이고 모든 방송사들이 한번쯤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