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 성추행 사태가 예능 제작진에게 던진 큰 숙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 시대는 예능 제작진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일상성에 대한 세심한 고찰, 갑질이나 젠더 감수성에 대한 보다 깊은 사려가 필요하다는 당부 수준이 아니다. 할리우드발 ‘미투’가 문화계, 학계, 정치권을 넘어 방송가에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나타나면서 예능 제작의 중차대한 요소가 됐다. 매주 예측 못할 파고를 넘고 넘어 항해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단 한 방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캐릭터의 대중성, 잠재력, 조화로움 등을 파악하는 기존 업무를 넘어서 미투 리스크에 대한 관리가 매우 절실해졌다.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곧 방송의 재미와 정서와 스토리를 결정하는 요즘 예능 패러다임에서 미투와 같은 사건이 주는 타격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흥궈신, 예능 치트키라 불리며 은골로 캉테 수준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예능판을 누비던 김흥국은 무기한 출장 정지가 되면서 관련 방송 스케줄이 꼬였고, 재능을 넘어서는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살아남은 장기근속의 모범사례라던 김생민은 10년 전 자신이 중요 출연자로 출연하던 한 프로그램에서 막내 여성 스태프들을 어떻게 해보려다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사실상 방송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됐다.

특히나 <김생민의 영수증> <짠내 투어> <전지적 참견 시점> 등 김생민이 출연하는 신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김생민의 ‘절약’ 캐릭터를 모티브 삼아 기획됐고, 재미와 이야기를 일정 부분 리드했다는 점에서 촬영과 편성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팟캐스트에서, 10분짜리 단발성 틈새 프로그램으로, 다시 정규 예능으로 편성된 성장 신화를 쓴 <김생민의 영수증>은 즉각 폐지됐고 20년 넘게 출연한 <출발 비디오 여행>을 비롯해 <동물농장> 등 김생민 파트를 덜어내야 하는 입장에선 프로그램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항로를 급격하게 바꿔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과거에도 연예인이 도박, 사기, 탈세, 가정사, 열애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문제시되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몇몇 영향력 있는 톱 MC들을 제외하면 자진하차 수순으로 끝나지, 프로그램이 폭파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투 리스크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권력의 힘으로 타인을 짓누른 파렴치한 행위인데다 오늘날 예능이 추구하는 가깝게 지내고 싶은 친구, 동료, 이웃과 같은 일상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방송용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로 보고 만난다는 생각으로 지켜본 시청자 입장에서 반감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오늘날 예능은 시청자와 예능 캐릭터가 맺는 돈독한 관계에서 재미를 생산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 배신감은 ‘웃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고개 숙임만으론 회복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현실과 예능의 경계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만약 한혜진의, 그리고 한혜진과 전현무의 열애가 <우결>과 같은 설정 기반 예능에 출연하고 있을 때 터졌다면 진정성 논란이 뜨겁게 붙었을 것이다. 방송 내의 스토리라인을 어긋나게 만들고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무너뜨리는 몰입 방해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으로 방송을 만드는 <나 혼자 산다>에서는 이런 연인으로 결실 맺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오히려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프로그램은 오히려 진정성을 획득하고 탄력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함께한다는 정서적 교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능은 이렇게 변했고 따라서 관리해야 할 리스크도 달라졌다.

미투 운동은 워낙 충격파가 큰 사안들인 만큼 본질에 대해 또는 변질에 대해 여러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핵심은 사회 각층에 공고히 자리 잡은 삐뚤어진 시스템과 그릇된 권위 의식에 경종을 울린다는 거다. 방송 문화계에서도 업무의 차이와 직급을 분업과 협업이 아니라 피라미드 신분제처럼 인식하고 살아온 세상에 균열이 생겼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생민이 정점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김생민 미투 사건이 방송가와 예능 업계에 남긴 파장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출연자의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겠지만 시대에 걸맞은 예능 제작 풍토를 다지는 계기 말이다. 이번 사건이 안 그래도 할 일 많고 복잡한 제작진의 짐을 좀 덜 수 있는, 반면교사가 되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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