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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비판의식은 어디로 사라졌나
기사입력 :[ 2018-04-06 17:15 ]


‘7년의 밤’, 눈물겨운 아버지의 분투기만 남긴 헛짓거리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7년의 밤>은 2011년에 출간된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원작은 스릴러적인 구성과 인물의 사연을 균형감 있게 다룬 솜씨로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화는 제작 후 2년이 지나서야 개봉했는데, 류승룡, 장동건 등 배우들의 호연과 세령 마을 묘사를 비롯한 연출의 공력이 대단히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특히 원작이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영화화의 과정에서 비틀린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7년의 밤>은 원작에서 두 아버지에 편중된 서사를 취사했다. 어머니들의 존재는 지워졌으며, 서원과 승환의 관점도 빠져버렸다. 영화는 오도된 부성애를 지닌 아버지들의 격돌로 채워져 있으며, 그 결과 아버지들의 자기변명에 치우친 서사로 흘러간다. 결국 원작이 품고 있던 남성성에 대한 비판은 흐릿해지고, 눈물겨운 아버지의 분투기만 남는다.



◆ 몽환적인 느낌 속에서 사라진 것들

영화 <7년의 밤>이 원작과 같지 않다는 점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다른 가이다. 영화는 사건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는 스릴러적인 구성을 포기하고, 소설이 취했던 다층적인 관점도 탈각해버린다. 장르적 서스펜스라도 유지하는 것이 차선이었겠지만, 영화는 이마저도 포기한다. 영화는 영제(장동건)의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치던 세령(이레)이 현수(류승룡)에 의해 죽는 장면을 보여주고는 곧바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현수의 모습을 비춘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일찌감치 알려줌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빼버리는 것이다.

영화는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포기하는 대신에, 심리 호러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귀신들린 듯한 동네 여자를 집어넣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박수무당이 굿을 하다가 서원에게 죽은 세령의 말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원작에서 이 장면은 영제의 지시를 받은 박수무당이 서원을 도발하려는 행위인 반면, 영화에는 정말로 영험한 샤먼의 신언인양 묘사되어 있다. 뭔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현수가 몽환 속에서 어린 시절의 환영을 보는 것이다. 현수는 세령을 죽여 호수에 던진 후 아버지가 빠진 우물의 환영을 본다. 현수의 아버지는 월남전 상이용사로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현수는 아버지의 신발을 우물에 빠뜨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신이 진짜로 우물에서 건져지자 공포에 질린다. 영화적인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무의식적인 혼돈의 분위기를 고조시킨 이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된다. 그런데 몽환적인 이 장면에서 원작의 중요한 사실관계가 흐릿하게 다루어진다.

원작에서는 현수가 아버지의 신발을 던질 때, 우물 속에서 들려오던 “현수야, 현수야” 부르던 소리는 하필 그때 우물에 빠져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즉 아버지를 구할 수 있던 시간에 현수는 아버지의 신발을 우물 속에 던지며 “죽어버려”라 말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살부의 죄의식’을 형성한다. 즉 막연히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거나 그의 신발을 우물에 갖다버림으로써 상징적인 살부 의식을 행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살부 행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현수가 우물에 신발을 집어던진 행위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를 모호하게 흐린다. 단지 내가 아버지의 죽음 기원했더니, 진짜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현수의 죄의식을 뭉뚱그린다.

이처럼 초현실적이고 무의식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며 심리호러적 질감을 키우는 것은 원작이 품고 있던 냉철함을 지운다. 즉 현수를 모호한 죄의식의 주체로 만듦으로써 그에 대한 연민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원작이 활용하였던 승환(송새벽)과 서원(고경표)의 다층적 시점 대신에 전지적 (신의) 관점을 삽입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현수와 영제라는 두 명의 아버지들의 대결로 이야기를 축소시키고, 그 아버지들 역시 ‘더 큰 아버지’인 신 혹은 운명의 사슬에 걸려든 가련한 주체로 만들어버린다. 감독의 부권적 세계관을 반영한 장치이다.



◆ 어머니를 지우고, 부성애를 찬양하라?

영화 <7년의 밤>은 철저하게 어머니들을 지운다. 원작에서 은주(문정희)의 비중은 낮지 않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특별출연’으로 축소되어 있다. 은주는 초반에 잠깐 등장할 뿐, 사건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말과 더불어 사라진다. 즉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서원을 남겨둔 채 자살이라도 한 듯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원작에서 은주는 영제에게 살해되었음이 밝혀진다. 은주는 서원이 납치되었던 그 밤에 영제에게 달려들어 “내 아들을 내 놓아라”고 소리치다가 맞아죽었다.

영화는 세령의 엄마 하영도 지운다. “진짜 악마” 같은 영제에게 어린 세령을 남겨둔 채 집을 나왔고, 이혼 소송 도중 세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하영이 영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또한 세령의 죽음 후에도 외국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편지쓰기를 통해 성찰과 고발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영제의 복수극을 예견하여 승환과 서원의 목숨을 구한다. 영화는 서원이 목숨을 구한 것은 현수의 속죄와 희생 덕분으로 그려졌지만, 원작에서는 하영의 예지와 희생 덕분으로 그려진다.



요컨대 영화는 두 어머니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그린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싸우다 죽은 은주와 딸을 죽인 살인자의 아들이 잘못된 복수극으로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하영을 모두 무기력한 자살자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서원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수의 부성애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에 괴로워했지만 이 모든 것이 오직 나를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화해하는 부자 구도로 만들어버린다.

영화는 현수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엮으며, 슬프지만 숭고한 운명의 서사시를 만든다. 즉 ‘아버지 되기’를 고민하는 일그러진 남성주체의 내면을 비추며, 그것이 대물림되는 운명의 끈과 자기희생을 통해 ‘나쁜 아버지’의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안타깝게 그린다. 하지만 현수가 그렇게 연민할만한 인물일까. 영화에서 그가 은주를 때리는 장면은 현수의 입장에서 그려져 있다. 즉 끔찍한 사고를 내고 집에 온 현수의 입장에서 왜 그곳에 가라고 그토록 바가지를 긁었느냐는 현수의 원망과 자신의 ‘나쁜 아버지’를 떠올리는 현수의 기억으로 구성된다. 즉 맞는 은주의 고통보다 ‘나쁜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노력하고 있는 현수의 심정을 중심에 둔 화면구성이다.

그가 세령을 죽인 행위는 또 어떤가. 단지 순간적인 실수라고 말해버릴 수 있을까. 위급한 상황에 이르자 내면화된 폭력성이 그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마을사람 수십 명을 수장시킨 것은 또 어떤가. 댐을 관리하는 보안팀장이라는 직업윤리를 가볍게 간과한 채, 어쩔 수 없는 부정이었다고 간단히 수긍할 수 있는가. 이런 윤리적 난제들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서원을 살리려는 현수의 분투에 집중하면서, 윤리적 난제들을 위대한 부성애 앞에 부차적인 것인양 만들어버린다.



◆ 복수극이 품은 아이러니를 성찰하지 못하고

심지어 영화 <7년의 밤>은 영제의 오도된 부성에 대해서도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지 못한다. 영제는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쁜 아버지’이다. 그는 아내와 딸을 소유물로 여기며, 폭력을 ‘잘못된 행동의 교정’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지배와 군림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영제는 아내의 이혼요구에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서 도망치던 딸이 엉뚱한 자의 손에 죽자 분노가 폭발한다. 그의 분노는 부성애의 발로가 아니라, ‘내 것을 부순 자’에 대한 복수심이다. 수많은 장르영화에서 딸을 죽인 자를 응징하는 아버지가 그려지지만, 그 분노가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사랑의 발로인지, 딸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침해당한 가부장의 분풀이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원작이 영제의 복수극을 통해 말하려던 뜻은 여기에 있다. 그 많은 복수극 속의 아버지들이 과연 딸에게는 좋은 아버지였는지, 혹시 살인자 못지않은 폭력을 집에서 행사하는 아버지는 아니었는지 반문하는 것이다. 영제는 살아있는 딸에게는 끔찍한 폭력을 가한 아버지였지만, 딸이 죽자 딸을 끔찍이 여긴 아버지로 격상된다. 즉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는 것이다. 범인을 향한 영제의 분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집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던 폭력은 은폐된다. 원작은 이런 아이러니를 뚜렷하게 조명한다. 그의 분노가 죽은 딸의 고통이 아니라 ‘딸을 잃은 나의 억울함’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그의 복수 방법을 통해 재 확인된다. 영제는 서원을 죽여 현수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세령이 자신의 부속물이었듯이, 서원을 현수의 부속물로 보는 것이다.



현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서원을 죽여 현수에게 복수하겠다는 영제의 노력은 계속된다. 원작에서 그의 노력은 실패한다. 현수는 사형 당하고, 영제는 체포된다. 즉 두 사람의 파이널 대결은 무산되고, 둘 다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현수는 자살함으로써 서원을 죽이려던 영제를 자멸시킨다. 즉 서원의 목숨을 두고 벌이는 두 아버지의 맞대결을 꽤나 정당성을 지니는 양 추인하는 것이다.

가장 어이없는 장면은 7년 전 현수와 영제가 격돌할 때, 현수가 영제에게 세령의 마지막 말을 들려주는 것이다. 원작에서 현수는 세령의 마지막 말은 영제를 도발하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었을 뿐, 끝내 무엇이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현수는 세령이 “아빠 잘못 했어요”라 말했다고 오열하듯 전한다. 그 말은 영제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이자, 어린 현수가 아버지에게 하고 싶어 했던 말로 그 자리에 놓인다. “그렇게 무서운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계속 귓가에 환청으로 들린다”는 현수의 말이 이를 보충한다. 영화가 왜 이 말을 굳이 만들어서 채워 넣었을까? 영제와 현수의 ‘아버지 되기’를 추인하려는 의도이다.



영화는 초반에 영제의 ‘나쁜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영제가 복수를 위해 집착과 광기를 드러내는 동안, 영화는 ‘나쁜 아버지’가 자신의 폭력성은 성찰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자리를 증명하기 위해 복수에 몰입하고 있다는 모순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나쁜 아버지’인 영제와 ‘실패한 아버지’인 현수를 격돌시키면서, ‘나쁜 아버지’의 ‘나쁨’을 잊게 만들고, ‘실패한 아버지’의 ‘실패’를 연민하게 만든다.

즉 영제와 현수 둘 다 잘못되었지만, 둘의 대결을 강조함으로써 둘 중 하나(현수)는 맞거나 어쩌면 둘 다 맞는 것 같은 착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령을 학대한 영제의 악, 세령을 죽인 현수의 잘못, 서원을 죽이려는 영제의 악, 아들 대신 수십 명의 주민을 수장시킨 현수의 잘못 등은 모두 희미해지고, 딸의 복수를 행하려는 영제의 집념과 아들을 살리겠다는 현수의 부정만 중요해진다.



이는 감독의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이다. 감독은 “이 영화는 ‘과연 그 악은 진짜인가’에 대해 고민한 작품”이라 말한 바 있다. 즉 감독이 의도를 가지고, 원작이 품고 있던 윤리적 난제들을 남성의 자기연민과 사면의 논리로 변질시킨 것이다. 요컨대 영화는 ‘아버지 되기’에 실패한 아버지들의 ‘악’을 내면적 고뇌와 처절한 분투로 말아서, 안쓰러운 부성애로 포장해버린다. 그리고는 이런 윤리적 패착을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대타자의 시선을 통해 운명의 잔혹함으로 초점을 흐리면서, 남성성에 대한 반성을 결여한 남성주체들을 운명의 채찍에 시달리는 가련한 희생자이자 죽음으로 부성을 증명하는 숭고한 속죄양으로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이리도 투명할까. 나쁜 아버지와 실패한 아버지의 서사를 위대한 부성애의 팡파레로 만들어버리는 남성적 자의식이 우물 속에 비친 얼굴처럼 빤히 떠오른다.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하자. 아버지와 아들이 밤새 술래를 바꿔가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유치한 놀이를. 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비련의 헛짓거리를.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7년의 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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