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만기’, 출생의 비밀보다 흥미진진한 김명민 정체성의 비밀

[엔터미디어=정덕현] 타인의 몸을 ‘임대’해 살게 된 영혼. 어찌 보면 KBS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은 이 짧은 설정 하나를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이 짧은 설정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몰입감이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기적 같은 힘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것은 이제 하나로 합쳐진 그 몸의 주인과 영혼의 주인이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오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몸의 주인이었던 송현철A(김명민)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신화은행 최연소 지점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혈한이고, 착하고 똑똑한 아내 선혜진(김현주)을 두고도 내놓고 바람을 피우는 뻔뻔한 인간이다.

반면 영혼의 주인인 송현철B(고창석)는 주방장으로 열심히 일해 이제 겨우겨우 빚을 내 중국집 하나를 갖게 되는 순간에 억울하게도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이미 화장되어 돌아갈 곳 없는 그는 본래 죽었어야 할 송현철A의 몸으로 들어와 ‘육체 임대’의 삶을 살게 된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넘치는 이 영혼은 송현철A와는 외모로도 성격으로도 또 살아왔던 배경으로도 정반대의 인물이다.



여기서 핵심은 다행스럽게도(?) 따뜻한 영혼을 가진 송현철B가 냉혈한 송현철A의 육신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육신은 냉혈한의 지점장 정체성을 가진 존재지만, 영혼의 따뜻함으로 인해 이 인물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한다. 진짜 아내인 조연화(라미란)와 가족들이 자신의 죽음 때문에 힘겨워 하는 걸 알고 그는 친구로 위장해 거액의 돈을 보내고, 딸 송지수(김환희)를 찾아가 애끓는 부정애를 보여준다.

따뜻한 영혼을 갖게 된 송현철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그 행위 하나하나가 ‘기적’ 같은 일로 다가온다. 물론 드라마는 빙의 콘셉트를 쓰고 있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나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며 거액의 돈을 챙겨주고 또 마음으로 보살펴주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쉽지 않은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올 수 이야기다.

하지만 기적은 송현철의 진짜 가족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송현철이 함께 살아왔지만 거의 도우미 취급을 받고 살아왔던 선혜진에게도 똑같은 기적이 벌어진다. 늘 하대하던 말투가 존대로 바뀌고, “아침은 먹었어요?”라는 말이나 “미안해요”라는 말 한 마디가 너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건 기적(?)이 일어나기 전 냉혈한 송현철에게서는 결코 바랄 수 없었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만난 기적>은 출생의 비밀 못지않은 ‘정체성의 비밀’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따뜻한 영혼이 빙의되어 있지만 육신의 정체성은 이미 지점장으로서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따뜻한 영혼의 송현철은 그런 성공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족이고 아내고 아이다. 마치 출생의 비밀이 그 출생이 드러날 때 극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내듯, <우리가 만난 기적>은 그 정체성이 드러날 때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유쾌하고 코믹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드라마지만 현실에 던지는 질문 또한 꽤 묵직하다. 영혼과 육신. 어떤 것이 인간의 진짜 정체성을 만드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다. 결국 육신이 만들어내는 물질적 정체성을 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겠지만,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그래도 영혼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진짜를 만든다는 것일 게다.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건 이렇게도 말해질 수 있다. 물질적인 것들보다 마음이야말로 ‘기적’까지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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