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혹자’, 위대하지도 유혹적이지도 않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월화드라마 <위대한 유혹자>는 프랑스의 고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음, 그렇다고 제작진은 밝히고 있다. 상류층 사회의 바람둥이 남자 발몽을 중심으로 사랑과 유혹의 법칙을 다룬 이 고전은 수없이 많이 변주됐다. 상류층 아이들을 통한 현대판 버전의 할리우드 영화 <사랑보다 깊은 유혹>이 있고 한국에서는 이재용 감독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스캔들>로 변주했다.

얼마나 대단하고 유혹적인 작품이기에 이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할까 싶은 기대감도 있었다. 혹은 평범한 드라마를 어떻게든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작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위대한 유혹자>는 재벌가의 아들이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에 마음의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권시현(우도환)이 남자주인공이다. 이 권시현의 친구들 최수지(문가영)와 이세주(김민재)가 있다. 이들 3인방은 가끔 권시현의 매력을 무기로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는지 없는지 게임을 한다. 그리고 권시현은 이 게임에 걸려든 평범한 여자아이 은태희(박수영)를 유혹하기 위해 접근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권시현은 인간적이고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은태희에게 빠져든다.



<위대한 유혹자>의 설정은 그럴듯하다. <위험한 관계>의 버전을 한국의 10대 타깃 드라마에 어울리는 버전으로 바꿔놓기는 했다. 원작의 정절을 지키는 여주인공보다 오히려 진취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여주인공 은태희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이 드라마의 반짝반짝은 딱 여기까지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진행패턴은 <위험한 관계>보다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아류처럼 보인다. 더구나 <상속자들>은 아무리 어이없어도 작가 특유의 화려한 대사들로 그 분위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위대한 유혹자>를 지탱할 수 있는 이야기와 대사의 힘은 거의 전무하다. 빼어난 색감과 감각 있는 미장센 덕에 아마 대사를 지우고 뮤직비디오로 대체하면 차라리 보는 맛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더구나 <위대한 유혹자>는 어설픈 멜로와 유치한 코미디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맞물리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느슨하게 만든다. 중간에 첼리스트인 최수지의 광기가 전면에 드러나거나, 두 남녀주인공의 비극적 과거사가 드러날 때는 오히려 과하게 무거워서 부담스러워진다. 드라마 자체의 밸런스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흐름인 것이다. 이러니 어느 순간 지루해지고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힘들어진다.



또한 드라마의 깊이를 책임질 중견배우들의 역할 역시 아쉽다. 재벌기업을 이끄는 부회장이자 권시현의 아버지인 권석우(신성우)가 특히 그렇다. 그는 현재의 약혼녀인 최수지의 어머니 명미리(김서형)와 과거의 연인이었던 은태희의 어머니 설영원(전미선) 사이에서 갈등하기에 이른다. 이 갈등 사이에 있는 권석우라는 능력 있는 중년남자의 매력을 <위대한 유혹자>는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스토리가 그것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배우의 능력치가 그것을 커버해야 한다. 하지만 미남 로커 출신의 신성우는 여전히 잘생겼지만 아직 그 여백을 담아낼 만큼의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는 남녀주인공을 맡고 있는 배우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주요인물인 네 사람 모두, 이들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해줄 만한 극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이들은 그냥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처럼 사랑하고, 삐지고, 허세 넘치고, 툴툴거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것만으로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보여주는 연기가 위대하게 유혹적이지는 않다.

이럴 경우 시청자는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위대한 유혹자>는 스토리는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카메라에 담긴 화면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그러니 빼어나게 예쁜 미장센에 담긴 젊은 남녀 배우의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보는 것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위대한 유혹자>의 시청률은 현재 1.5~2%를 맴돌고 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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