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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쥐로 인해 망가진 절구를 과감히 버린다는 건
기사입력 :[ 2018-04-14 14:37 ]


‘눈꺼풀’, 깨어난 시민들은 잠들지 않고 진실을 볼 것이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의 독특한 지역성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다. 2009년에 그가 만든 <어 저 긔것><뽕똘>은 여유자적 살아가는 제주도민의 일상을 특유의 활력으로 보여주는 코미디였다.

두 편을 통해 장편영화 제작 가능성을 타진한 오멸 감독은 본격적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을 만들었다.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은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며 역사의 실상을 드러낸 영화이자, 당시 억울하게 학살당한 원혼들을 위로하는 씻김굿 같은 영화였다. 영화는 고발의 성격을 넘어 뛰어난 예술성과 신령한 기운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성취를 인정받아 부산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르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눈꺼풀>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 만들어졌다.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었던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 직후 몇 명의 영화 스태프들과 함께 무인도에 들어가 두 달간 캠핑을 하며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일찌감치 완성되었지만 발표되지 못하고 있다가, 정권이 바뀐 이후인 2017년에야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수상했고, 개봉까지 하게 됐다.



◆ 망자들이 떡을 먹고 떠나는 곳

영화 <눈꺼풀>은 제주도의 해안과 숲의 풍광은 물론이고 뱀, 지네, 달팽이, 염소 등 자연물에 대한 클로즈업을 통해 명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과묵한 대사와 롱 테이크 화면, 그리고 불상이나 굿 같은 초현실적인 상징물을 통해 제의적인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경계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회한을 담는다. 지금은 다소 희미해졌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 온 국민이 빠져있던 감성의 결을 떠올린다면, 영화가 품고 있는 감수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다. 즉 참사 직후 온 국민이 깊이 빠져있던 비탄, 허탈, 무기력, 간절함 등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영화는 타이틀과 함께 암전이 되면서 노인의 내레이션을 들려주며 출발한다. 달마가 동굴에서 참선을 하는데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도려내며 잠을 쫓았다는 이야기. 그리고는 화면이 희미하게 밝아지면서, “심하게 앓아누워 사흘 째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노인의 일성과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즉 세월호 참사로 인한 비탄과 무기력 속에서 이제 뭐라도 좀 해야 한다는 그 심정으로 만들어낸 영화인 것이다.



영화는 외딴 섬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행위를 비춘다. 그는 뱀, 염소 등과 함께 살아간다. 비바람과 함께 낚시꾼이 찾아오자 노인은 정성스럽게 떡을 만들어준다. 절구에 쌀을 찧고, 시루에 찐다. 그리고는 제기 위에 떡을 올린다. 굿이 벌어지는 해안에서 떡을 집어 먹은 낚시꾼은 홀연히 사라진다. 즉 노인이 사는 이 섬은 현실계가 아니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휴게소 같은 공간이다. 망자들은 이 섬에서 노인이 빚은 떡과 물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먼 길을 떠난다. 노인은 한명이기도 하고 두 명이기도 하다. 영화는 중간에 두 명의 똑같은 노인이 교차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즉 노인은 개별성을 지닌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집합 명사적 존재로 섬의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 빨간 가방과 쥐가 섬에 오르다

노인은 파도에 떠밀려온 물건들을 주어서 살아간다. 짝짝이 신발이 이를 말해준다. 그런데 유독 빨간 여행 가방이 섬에 닿자, 노인은 꺼림칙해하며 갖다버린다. 하지만 갖다버려도 계속 돌아온다. 가방을 열어보니 바닷물만 가득하다. 빨간 가방은 타이틀이 뜨기 전 짧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잠깐 등장하였다. 망망대해에 뜬 작은 보트에 탄 사람들이 빨간 가방을 바다에 밀어놓고 사라진다. 즉 빨간 가방은 인간세계에서 노인의 세계로 떠넘겨진 번뇌의 상징이다. 노인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낙엽은 이렇게 쉽게 떨어지는데, 번뇌는 떨치기 어렵다”고 혼자 말을 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바닷물만 가득한 여행 가방은 익사체의 존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가방의 주인이자 익사한 존재들이, 해결되지 않은 번뇌의 형태로 섬에 가닿은 것이다.

빨간 여행 가방이 섬에 당도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바다를 헤엄치던 쥐 한마리가 섬에 오른다. 라디오에서는 세월호 침몰 뉴스가 나온다. 필시 난파선에서 탈출한 듯한 쥐는 섬에 오른 뒤, 밤새 달그락거리며 노인의 잠을 설치게 한다. 이후 노인의 삶이 몹시 삐거덕거린다.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며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몇 번의 어긋남 끝에 마침내 전화를 받은 노인은 이곳에 올 방문자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듯하다. 쥐는 노인의 방을 들쑤시며 돌아다니다 노인과 세상을 이어주던 라디오를 못 쓰게 만든다. 노인이 쥐를 잡으려고 절구 공이를 휘두르다 절구 공이가 부서져버린다.



때마침 섬에 헛헛해 보이는 선생님(이상희)과 학생들이 도착한다. 노인은 이들에게 줄 떡을 만들기 위해 부서진 공이 대신 불상의 머리로 쌀을 찧는다. 하지만 불상도 부서지고, 절구도 깨져버린다. 이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이곳에 불시착하게 만든 사고가 죽음의 본래적 질서에 어긋나는 일임을 암시한다. 노인이 남학생을 보고 “누구니?”하며 역정을 내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래의 순리(절구공이)로도 떡을 만들 수 없고, 이를 대신할 부처의 자비로도 떡을 만들 수가 없다.

심지어 섬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도 쥐의 사체로 오염된다. 썩는 냄새 때문에 선생님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섬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풍뎅이는 배를 까뒤집고 말라죽어가고, 염소도 생기를 잃는다. 이는 뚜렷한 상징이다. ‘쥐’로 인해 질서와 시스템이 망가졌으며, 그 결과 세월호 참사도 일어난 것이라는 설명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쥐’가 그 ‘쥐’인가? 맞다)



◆ 거인의 부릅뜬 눈

노인은 산에 올라 망치로 돌을 깨서 새 절구를 만들려하지만, 망치마저 부러진다. 노인은 깨진 절구를 우물에 던져버린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과 함께. 여기서 부터 약 7분간 영화의 압권이 펼쳐진다. 절구는 우물을 통해 깊은 해저로 곤두박질치고, 파괴적인 굉음과 함께 해저지형 위를 굴러다닌다. 카메라는 마침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세월호의 창문에 다다른다. 선창을 잠시 응시하던 카메라는 다시 해저지형을 비춘다. 바다 속 깊은 곳에서는 융기하듯 거인의 형상이 서서히 솟아오른다.

마치 거인이 깨어나는 듯 서서히 암석이 움직이고, 비스듬한 옆얼굴과 손가락의 형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의 앞에 세월호가 놓인다. 거대한 불상 모양의 형상이 더욱 또렷이 보이다가,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리는 순간, 그의 뜬 눈이 관객의 눈과 마주친다. 눈꺼풀을 잘라내며 깨어있고자 했던 달마의 일화처럼, 세상의 번뇌에 눈감지 않는 부처의 부릅뜬 눈이 영화의 오싹한 대미를 장식한다.



고쳐 쓸 수 없는 망가진 절구를 우물에 갖다버리는 행위, 이러한 파괴적 결단을 통해 ‘거인의 깨어남’이 일어난다. 거인은 부처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고 주권자일 수도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말했던 의미의 절대군주 혹은 국가일 수 있으며, 민주사회의 정치 신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국가에 주권을 위임한 대문자 ‘국민’ 일 수 있다. 즉 촛불혁명의 국면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며 ‘시민’ 혹은 ‘촛불민심’이라 불렸던 제헌적 힘의 실체에 가깝다.

2016년 가을부터 터져 나왔던 촛불시민의 주체성은 <눈꺼풀>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형상화된 ‘거인의 깨어남’과 상응한다. 쥐에 의해 깨진 절구를 버림으로써 바다 속에서 잠자고 있던 거인이 눈을 뜬다. 즉 망가진 시스템을 버림으로써, 시민이 깨어난다.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주권적 힘을 깨닫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달마가 눈꺼풀을 도려냈듯이, 세월호 참사 이후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 사람들에 의해, “이제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며 조금씩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의해, 거대한 민심이 깨어나고 그렇게 촛불혁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세월호 7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깨어난 시민들은 달마의 부릅뜬 눈으로, 잠들지 않고 진실을 볼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눈꺼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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