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 오만석과 장소연, 이런 아빠와 누나라면

[엔터미디어=정덕현] 단 한 회만의 폭풍전개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비밀연애는 윤진아네 집안사람들과 서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의 ‘가족 같은’ 관계 때문에 공개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이들은 마치 한 가족 같은 사이다. 그러니 그 사랑 공개가 어찌 쉽겠는가.

대체로 이런 설정을 갖고 있는 드라마는 그 공개과정을 아주 천천히 보여주기 마련이다. 즉 한 사람씩 그 사실이 공개될 때마다 나오는 갈등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물론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서준희의 친구이자 윤진아의 동생인 윤승호(위하준)에게 들키고, 그 다음에는 아빠 윤상기(오만석)에게 들키는 식으로 가장 갈등이 약할 수 있는 부분부터 공개하긴 했다. 하지만 그 후 한 회 만에 아빠에게 윤진아는 이 사실을 털어놓고, 또 친구 서경선에게도 공개한데다, 심지어 최대의 난관으로 보이는 엄마 김미연(길해연)에게까지 그들의 관계를 드러냈다.



이렇게 빠른 비밀연애 공개는 이 드라마가 그런 갈등 상황을 갖고 굳이 옛날드라마들처럼 질깃질깃하게 끌고 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사실 그런 갈등 상황을 질질 끌고 가는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드라마가 지속적인 갈등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일종의 문법인 셈이다.

안판석 감독은 그런 드라마적 문법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 그래서 한 번 뚜껑이 열리자 봇물 터지듯 비밀이 공개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담아낸다. 심지어 회사에서 서준희에 마음을 두고 있던 강세영(정유진)에게도 그저 툭 던지듯 동료 금보라(주민경)의 입을 빌어 그 비밀을 공개해버린다.



이렇게 되자 그 공개과정에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드라마들이 취하는 사랑하는 사이와 이를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 과정 속에서도 보이는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윤진아의 아빠 윤상기와 절친 서경선이다.

퇴직 후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빠는 딸이 서준희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홀로 술을 마신다. 물론 약간의 불편함은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아빠는 오히려 그 비밀연애를 숨겨주려 애쓴다. 역시 정 많은 사람이지만 속물근성이 있는 아내 김미연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벌어질 파장이 만만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빠는 딸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윤진아와 서준희의 비밀연애를 통해 보이는 건 아빠의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이런 점은 윤진아의 절친 서경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동생 서준희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윤진아의 그림을 보며 눈치를 챈 서경선은 믿고 싶어 하지 않고 화도 났지만 결국 윤진아에게 마음을 연다. 엄마의 산소를 찾아간 서경선은 동생을 욕하다가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린다. 그리고 동생이 상처입고 아파하는 건 자신 또한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윤진아와 서준희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누나의 동생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비밀연애가 공개되는 과정을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가진 따뜻한 정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회사에 가면 여전히 힘겨운 현실들이 존재하고, 지긋지긋한 스토커가 되어버린 전 남친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위협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는 순간순간 우리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살만하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양가에 비밀연애가 공개되는 것이 불안했던 건, 가족들끼리 갈등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가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색함이나 약간의 불편함은 사랑으로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윤상기 같은 아빠, 서경선 같은 누나라면.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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