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바로 너’, 수많은 신규 예능 중 군계일학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개편철을 맞아 지난주 금요일 꽤 많은 신생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과 만났다. KBS2는 출연자가 직접 콘텐츠를 구상한다는 <셀럽피디>와 음식을 베이스로 자연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들어간 슬로라이프 예능 <나물 캐는 아저씨> 두 편을 동시에 선보였고, 영화 매체의 몰락기에 등장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반가운 토크쇼 JTBC <방구석1열>, 어촌에서 채집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를 나눠 먹고, 그 사이 인문학적 식견을 곁들이는 TV조선 <장화신GO 어촌캠프>, 엠넷의 또 다른 음악예능 <더 콜> 등이 모두 지난 금요일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모든 프로그램을 다 합친 것보다 큰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지난 4일은 넷플릭스의 첫 번째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 <범인은 바로 너>가 처음 업로드된 날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의 본격적인 출범, 기존 방송 콘텐츠 시장을 글로벌하게 뒤흔든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콘텐츠에 대한 높은 신뢰, 방송국 단위에서 투자할 수 없는 제작비와 사전 제작 시스템 등 지금까지의 방송 제작 환경과 전혀 다른 보다 거대한 녀석의 등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새로운 재미 혹은 시도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의 예능인 유재석을 품고 드라마 타이즈 예능을 선보인다고 공언했으니, 관찰형 예능이 꽤 오랜 시간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받았다.



<범인은 바로 너>는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진이 탐정단이 되어 사건의 비밀을 풀어가는 스토리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1,2화를 보면서 왜 넷플릭스가 이 콘텐츠를 드라마 타이즈 예능이라고 홍보했는지 그 단서를 아직 찾지 못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드라마를 결합했다면 롤플레잉 게임처럼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서 의외성과 즉흥성을 띄고 선택의 가지치기를 통해 스토리가 쌓이면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범인은 바로 너>는 제작진 대신 유명 배우들이 미션을 내주고 설명한다는 점과 게스트 대신 카메오란 이름으로 김수로, 유연석 등의 배우와 아이돌들이 참여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런닝맨>의 미션 진행 방식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추리도 <런닝맨>에서 선보인 바 있는 방탈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지난 10여년 가까이 봐온 예능이었다. 게다가 전경을 훑는 카메라 워킹과 화면 구성 방식, 미션 완료 기점에서 플래시백을 적극 활용해 이야기를 완성하는 편집법, 강당에서의 풀샷 등에서 <런닝맨>의 향수가 매우 짙었다. 설마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니까 드라마라고 말하는 건 아닌지 오해가 싹틀 정도다.



예능이란 측면에서 지금의 드라마 타이즈 기법은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아예 드라마처럼 극중 배역에 몰입한 상황이 아닌 어설픈 역할극을 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관계망 형성이나, <런닝맨>에서 의외성과 에너지를 창출하는 전소민, 이광수 등의 캐릭터가 활약할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 게다가 중간 중간 투입되는 인물들이 힌트를 제시해 결국 제작진이 설정한 미션 위주로 스토리와 캐릭터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보니 등장인물만 많고 진행과정이 부드럽지 않아 어수선하다.

출연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게 아니고 결국은 제작진이 설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예능 차원의 에피소드를 마련하는 식인데 이런 수준의 극과 예능의 조합은 누가 우승할지 제작진도 모르는 <런닝맨>이나 <무한도전> 추격전보다 두어 단계 낮은 드라마 타이즈다.

드라마 타이즈에 대한 열망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가진 생물적 특성이 발휘될 틈을 막아버렸다.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눈에 익고, 그들 간의 조화와 친목을 다져가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움과 의외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각자 역할이 나눠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출연진 모두가 똑같은 탐정인데다 각본을 따라야 하니, 서로 이야기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갈 틈이 없다. 살아 있는 스토리라인을 따라 시청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나누는 캐릭터쇼의 재미가 봉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범인은 바로 너>는 예능의 다음 챕터가 아니라 사전제작에 어설픈 역할극이란 수갑을 채우면서 전소민, 이광수 등이 활약할 수 없는 <런닝맨>이자, 웃음 펀치력 떨어지는 멤버들을 이끌고 으쌰으쌰하는 전형적인 유재석식 예능에 가깝다. 물론, 변명은 있다. 제작발표회에서부터 1,2회는 좀 어수선하고 관계도 서먹해서 호흡도 그렇고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후에는 출연진들도 적응하고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최대 기대치는 재밌는 <런닝맨>을 넘어서기 어려울 듯하다. 재미를 위한 장치, 스토리를 이어가는 미션 위주의 진행, 진행과 편집과 화면 구성 방식 모두 <런닝맨>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너>는 여기에 운동능력이 필요한 게임 룰을 빼고, 매우 살짝 추리를 얹은 외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콘텐츠에 드높은 자부심을 갖고 자본을 쏟아 붓는 넷플릭스가 왜 <런닝맨> 제작진과 유재석과 이광수를 중심으로 이런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조금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그 이유를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해외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 글로벌 사업을 하는 넷플릭스는 <런닝맨>을 갖고 싶었나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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