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저씨’, 절망 속 이선균·아이유를 그래도 숨 쉬게 해준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말을 나에게 해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나한테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박동훈(이선균)의 아내 강윤희(이지아)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형 박상훈(박호산)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동생 박기훈(송새벽)은 마치 그를 대신하듯 분노해줬다. 밤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술자리에 삼형제는 함께 앉아 있었다. 형과 동생과는 달리 좀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박동훈이 아버지가 평소 했던 그 말을 꺼낸다. “아무 것도 아니다.”

어찌 그게 말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반복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건, 그것이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그랬듯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박동훈은 바라고 있었다. 형제들까지 이렇게 저 스스로 슬퍼하고 분노하는 걸 보기보다는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도청된 휴대폰을 통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이지안(아이유)은 박동훈의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과거 할머니에 대한 폭력 때문에 자신이 광일(장기용)의 아버지를 죽였던 사실을 박동훈이 알게됐을 때 그가 해준 말이 떠올라서다. “옛날 일 아무 것도 아니야. 니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마치 자신의 아버지처럼 이지안에게 그 얘기를 해줬던 거였다.



이 장면과 그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상처받은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나의 아저씨>는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아주는 드라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따뜻한 가슴과 그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말 한 마디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슴과 마음과 말은 때론 죽고 싶은 사람을 살아가게도 만들어준다.

“걱정하지 마세요. 동훈이 우리랑 같이 있어요. 제수씨.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혼자 고생하시고 진짜 진짜 죄송합니다. 전요 제 동생이 동훈이가 이 얘기를 아무한테도 안했다는 게 지 혼자만 마음아파 했다는 게 그게 너무 슬퍼요. 근데 그건 동훈이가 제수씨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죠. 우리 동훈이가 그런 놈입니다.”

동훈의 아내에게 큰형 상훈은 오히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일조차 장남인 자신이 변변치 못해 벌어진 일처럼 느낀다. 자신이 제대로 못해 동생과 제수씨가 힘들었고 그래서 이런 일조차 벌어지게 됐을 거라고. 그런데 상훈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 건 동생이 상처 입은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고 혼자 마음 아파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상처를 나누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그럴 사람이 옆에 없었다는 것. 누군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라도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



새벽녘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시간까지 잠 못 자고 동훈의 이야기를 듣던 이지안은 한참을 고민하다 동훈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내일 인터뷰 잘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그 메시지를 받고 동훈은 역시 혼잣말로 “고맙다”고 말한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들은 동행 기훈은 그게 들리냐며 문자를 보내라고 한다. 고마움을 표현하라고. 물론 동훈은 문자를 보내지 않지만, 그 마음은 이미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지안에게 전해진다.

철길을 건너 동네로 들어가는 길 동훈은 형제들에게 말한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져.” 동훈이 “나 그렇게 괜찮은 사람 아냐”라고 했을 때 “아니에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엄청.”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지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뒤에서 “파이팅”하고 외쳐주었던 사람도 바로 이지안이었다. 그런 응원이 있어 동훈은 그래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나의 아저씨>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섣부른 희망과 판타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런 희망과 판타지가 실제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아저씨>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지만 어쩌면 그 어느 것보다 큰 일이 작은 위로와 응원이라고 말한다. “착하다”, “존경합니다”, “용감하다”, “고맙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같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걸.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