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 한 회에 사건 3개, 이런 밀도와 구성이 가능하다니

[엔터미디어=정덕현] 유명한 미드 원작의 리메이크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본래 작품이라면 이렇게 촘촘해야 했던 걸까. KBS 수목드라마 <슈츠>를 보다 보면 그 촘촘함의 밀도와 구성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고 질투가 나기까지 한다. 저 정도를 쓰려면 얼마나 많은 현장 사건 취재와 집필에 많은 인력들이 투입되어야 할까. 물론 그 원작을 이렇게 리메이크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한 회에 무려 사건이 3개나 등장한다. 하나는 루게릭병 치료제를 개발해 임상실험을 마치고 허가까지 받아 출시한 제약회사가 의뢰인이다.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던가 혹은 법원에서 승소를 하던가 해야 하는 게 이 일을 맡게 되는 강&함 로펌의 에이스 최강석(장동건)의 입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최강석이 맡아 진행해야 하는 소송은 이 일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일이다. 한 케미컬 회사가 입힌 피해 때문에 집단소송을 하게 된 피해자들의 위치에 서서 싸워야 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강&함 로펌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모의법정에 서게 되는 고연우(박형식)가 맡은 사건이 더해진다.



보통 우리네 장르드라마에서 특히 법정이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한 회에 한 사건을 다루는 것도 쉽지 않다. 보통은 한 주 분량인 2회에 걸쳐 한 사건이 다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된 건 한 회에 한 사건을 다뤄도 낯설 수 있는 법정극의 특정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다. 피해자의 입장, 피의자의 입장에 검사측과 변호사측의 치열한 두뇌싸움까지 겹쳐지고 때로는 판사의 입장까지도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한 사건에 발을 딛고 있는 이 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입장들을 한 회에 담기가 버거워지는 것.

그런데 <슈츠>는 무려 한 회에 사건 3개를 동시에 굴린다. 물론 그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과시를 위함이 아니다. 그건 실제 로펌에서라면 벌어질 수도 있는 동시 진행되는 사건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때론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다가 때론 피해자들의 소송을 막기 위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해야 하는 로펌 변호사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다. 그렇게 양측 입장으로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어느 한 편으로만 봐왔던 법의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입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이 법정극을 소재로 끄집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누구에게나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상대편 입장에 자신이 서게 되는 상황.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슈츠>에는 최강석과 대적하는 하이에나 데이빗킴(손석구)이 강렬한 인상을 주며 등장한다. 서로 닮았다고 얘기하듯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길이 된다.



이 두 사건에 고연우가 하게 되는 모의법정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최강석이 데이빗킴이라는 하이에나의 더티 플레이를 대적해야 하는 것처럼, 고연우 역시 모의법정에서 더티 플레이를 예고하는 상대 서변(이태웅)을 대적해 이겨야 한다. 세 개의 사건이 등장하고, 그건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렇게 세 사건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진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어떤 상황들에서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타자 심지어는 적의 상황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연결된 세 사건으로 <슈츠>는 말해주고 있다.

그 밀도와 구성의 촘촘함에 놀랍고 부럽기는 하지만, 그 촘촘함은 안타깝게도 일반적인 시청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현재의 우리네 시청자들의 눈높이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지만, <슈츠>는 계속해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야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대사들을 통해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들을 습득해야 비로소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파악되는 그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흠이라면 너무 촘촘한 게 <슈츠>는 흠이다. 특히 KBS처럼 아직까지는 보수적인 시청층이 존재하는 채널에서 이런 시도와 도전은 그래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현 단계에서 어떤 확실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느슨한 우리네 드라마의 고삐를 확 당겨주는 <슈츠>의 밀도는 충분히 한 번쯤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그간 우린 너무 헐렁한 드라마들을 봐왔던 건 아닌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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