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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제작진의 간곡한 권유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사입력 :[ 2018-05-18 18:29 ]


칭찬 받아 마땅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놓친 것 하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특히 5·18진상규명특별법 제정으로 더욱 뜻 깊은 기념일을 맞게 됐다. 지난해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오랫동안 은폐돼온 학살의 기록들이 새롭게 드러난 가운데 5·18진상규명위원회의 출범으로 그날의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5·18 특집 2부작 ‘잔혹한 충성’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그동안 크게 공론화되지 못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지난 12일에 방송된 1부 ‘비둘기와 물빼기’에서는 5·18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통과 5·18 유족들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사찰 등을 다뤘고, 오는 19일에 방송될 2부에서는 또 다른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밝힐 예정이다.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기록들인 만큼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 어느 때보다 ‘함께 들어주시길 바란다’고 간곡히 권유한다. [TV삼분지계]도 그 권유에 동참했다.



◆ 5.18 성폭행 피해자들의 38년만의 ‘미투’

‘군인이나 경찰의 진압은 정당하다. 중앙 정부에서 정했으면 그것이 정의다’ 전 505부대 보안과장 서 모 중령의 말이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왜 내게 책임을 묻느냐 반문하는 그. 철면피가 따로 없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고통에 못 이겨 스스로 삶을 목숨을 끊거나 기억을 애써 지우며 근근이 살아왔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분신을 택했을까. 아마 숨죽이고 지내온 피해자들도 다수 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안다고 나서는 이가 없으니 기막힌 노릇이 아닌가.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아직도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졌다. 입에 담기도 죄스러운, 무고한 여학생들이 겪은 끔찍한 사건. 사실 당시 그와 같은 엄청난 범죄가 광주 곳곳에서 벌어졌었다는 소문이 돌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는 없지,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니 명백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5.18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건 그들이 권력을 총동원해 철저히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애통 절통한 억울함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아쉬운 한 가지는 피해 사실을 묻는 역할을 남성 제작진이 맡았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들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하지 않았나. 표백제라도 들이부어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피해 여성들이 낯선 남자에게 그 날의 일을 말하리라 믿었단 말인가. 5.18 성폭행 피해자들의 38년만의 ‘미투’다. 관련자의 강력한 처벌 없이는 용서가 아니 되는 중대 사안이다. 부디 국가가 발 벗고 나서주길 바란다.



◆ 이제는 들어야 할 때

영화 <택시 운전사>는 1980년 오월의 광주를 취재해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기자와 당시 목숨을 걸고 그를 광주로 데려간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억지 신파로 소비하지 않고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재현한 이 작품은 지난해 유일한 천만 영화로 기록되며 많은 이들에게 호평받았다. 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의 시선이 어느덧 외국인으로까지 확대되는 동안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 씁쓸한 현실을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은 모든 역사의 현장에 있었으나 그들의 이야기는 주변화 되어 언제나 가장 나중에 도착했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5·18진상규명특별법에 성폭력 조사를 포함하는 개정안이 다시 제출될 정도로 여성들의 이야기는 최근에서야 본격 공론화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광주의 진실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5·18 특집이 맨 앞에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위치시킨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 ‘비둘기와 물빼기’라는 1부의 제목에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비둘기와 물빼기 작전은 지난해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제출받은 8천여 쪽에 이르는 내부 문서를 통해 최근에야 밝혀진 5·18 유족 대상 공작 프로젝트를 뜻한다. 군부가 일찌감치 핵심 문서들을 파기한 뒤 뿔뿔이 흩어진 여러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겨우 발굴 정리한 새로운 진실들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성폭력 범죄는 피해 여성들의 증언과 당시 병원 진료차트 정도 외에는 기록조차 찾기 어렵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직접 찾아가 사연을 조명한 세 명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사건 직후 모두 정신과 치료를 병행했다. 가족들 역시 하나같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이상 행동을 반복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 같은 공통된 증언은 피해자의 극심한 충격과 고통을 말해주는 한편으로 여성의 피해 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시대의 한계를 함께 환기한다. 그녀들은 언제나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날 방송에서 유난히 진지하게 ‘함께 살펴보고 들어 달라’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이제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 악인을 단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평범한 이들의 자성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2부작으로 마련한 5.18 특집 ‘잔혹한 충성’의 1부인 ‘비둘기와 물빼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은폐해 온 게 누구인지 정면으로 응시한다. 광주에 주둔했던 505보안부대는, 항쟁 유공자들과 유가족들을 성향별로 나누어 분류하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사찰하며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물빼기’를 시도했다. 내심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만 하고 있던 이들도, 제작진이 입수한 문건을 본 순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체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탓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제작진의 노력에 공감하면서도 한 가지는 지적해야겠다. ‘비둘기와 물빼기’는 최근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계엄군에 의한 여성 성폭력 피해 사실을 조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그 동안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걸까요? 어쩌면 이 순간에도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이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505보안부대로 넘어간다. 이런 연출은 마치 여성 성폭력 피해 사실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게 다 505보안부대의 은폐공작 때문이라는 듯한 착시를 유발한다.



하지만 정말 문제제기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나? 오월여성연구회가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을 발간한 게 벌써 27년 전인 1991년이었다. 여성의 성범죄 피해사실을 수치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그 목소리가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던 것뿐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윤청자 오월민주여성회 부회장은 “왜 그동안 여성들의 피해를 말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새삼시럽다. 우리가 지금껏 말을 안 혔겄어. 전체 투쟁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우리 얘기만 내세우질 못한 거지.” (‘계엄군 성폭력’ 피해 광주 여성들, 왜 말하지 못했나. <한겨레>. 2018년 5월 10일. 남은주 기자.)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해 왔던 이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민사회 안에서도 여성의 역할과 피해사실을 축소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가는 건 아쉬운 수준을 넘어 위험해 보인다. 악인을 단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고립되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평범한 이들의 자성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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