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의 배신, 현실이 그토록 넘기 힘든 벽이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현실은 그토록 넘기 힘든 벽인가.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끝없는 고구마 전개에 이어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 속물적인 사고방식으로 결혼 반대하는 엄마라는 상투적인 이야기에 실망하던 시청자들은, 결국 홀로 미국으로 떠난 서준희(정해인)와 홀로서기를 하려는 윤진아(손예진)가 이별을 하는 걸 바라봐야 했다.

물론 그렇게 서로가 떨어져 시간을 갖는 것까지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와 윤승호(위하준)의 결혼식에 온 서준희가 다시 만나게 된 윤진아 옆에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단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한다는 설정도 그렇지만, 그간 서준희 없이는 못살 것처럼 보였던 윤진아가 그 사이 벌써 다른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배신감을 주는 건 이 드라마의 멜로만이 아니다. 이 멜로드라마가 신선해질 수 있었던 윤진아의 회사에서 벌어진 ‘미투’를 연상케 하는 사건 역시 너무나 허무하게 처리되어 버렸다. 윤진아가 나서서 ‘미투’하려 하자 늘 그를 편들고 있는 듯 보였던 대표이사 조경식(김종태)이 돌변한다.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며 정영인(서정연)에게 “적당히 하라” 엄포를 놓은 것. 결국 이 사안은 윤진아가 물류창고로 전근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건 물론 현재 ‘미투 운동’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그대로 담은 것이었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그렇게 피해사실을 얘기하고 나섰지만 실제로 변화된 것들은 별로 없고,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 취급을 받는 2차 피해가 양산되는 게 지금의 부조리한 현실이 아닌가. 그러니 이 드라마는 막연한 판타지보다는 그 현실을 담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시청자들이 바라는 건 아니었고, 또 이 드라마가 애초부터 그리려던 이야기의 방향 역시 아니었던 게 사실이다. 윤진아가 같이 미국으로 가자는 서준희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커버린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중요하다.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던 현실과 맞서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세상은 변하지 않고, 홀로 서는 일이 타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건 너무 패배주의적인 시각은 아닐까. 시청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더 큰 것은 이 드라마가 초반에 그려냈던 그 ‘예쁜 생각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 좋았던 생각들이 이토록 현실의 벽 앞에서 깨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드라마가 반드시 판타지적인 해피엔딩을 그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애초에 나가려 했던 방향을 억지로 틀어버리는 일은 무리한 일이고, 나아가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을 반드시 드라마가 이뤄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납득은 가야 되는 일이 아닐까. 남은 마지막 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과정이 남긴 찜찜함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실을 담으려 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런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그 현실의 ‘결핍’을 채우고픈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두 사람의 ‘예쁜 사랑’에 주목했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배신감 같은 걸 느끼는 건 그 ‘예쁜 사랑’마저 깨버리는 갑작스런 ‘현실의 틈입’ 때문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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