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참시’, MBC 공허한 결론 말고 책임자 강력히 처벌해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한 편의 예능이 방송사의 브랜드와 방향성에 대한 불신의 불을 다시 지폈다. MBC는 지난 10여 년간 가장 많이 망가진 방송사다. 물론 서울 송파구에는 언론 탄압의 시대는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무리가 있긴 하지만, 공중파 메인 뉴스의 처참한 신뢰도와 낮은 시청률은 보도의 질과 편향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간의 참상에 대한 증언도 우린 두 차례의 파업을 통해 들어왔다. 많은 기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보직을 받거나 해고당했고, 파업에 참여한 유명 아나운서들은 대부분 프리 선언을 했다. 두 차례의 파업을 거친 예능국의 사정도 심각해졌다. 2000년대 중반 MBC를 예능 왕국으로 이끌었던 여운혁 PD를 시작으로 김태호 PD를 제외한 주요 인재들은 JTBC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나 제작사로 대부분 옮겨갔다.

그리고 먼 훗날 시민들이 이룩한 평화 혁명이라 기록될 촛불 시위를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MBC도 정상화 수순을 밟길 바라는 마음과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모처럼 나타난 히트 예능에 ‘어묵 사건’이 터지면서 방송사의 브랜드는 다시 한번 상승 동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고 참담한 내용인지라 간단히 요약만 하겠다. <전지적 참견 시점> 제작진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뉴스 속보 영상을 하나 가져다 가공해 썼는데 그 장면이 하필이면 동료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최근 해고당한 아나운서가 세월호 사건을 보도한 장면이었다. 세기의 비극인 세월호 뉴스를 웃음의 소재로 쓴 것 자체도 상식선에 맞지 않지만 더 심각한 사안은 그 웃음의 소재가 어묵이었다는 데 있다. 그속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회화하는 극우 사이트의 인륜지사를 거스르는 맥락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식의 교묘한 장난은 그 사이트 회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 하는 대표적인 패악이다.



관련해 즉각적인 사과와 함께 조사위가 꾸려졌다. 시청자들은 비난을 잠시 거두고 기다렸다. 그러나 거창하게 출범한 MBC 긴급조사위원회는 <전지적 참견 시점> 제작 과정에서 고의성이 없었다고 밝히며 “부주의하게 넘어간 연출자와 책임자들에게 단순 과실 이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대대적인 조사위를 꾸미고 최승호 사장까지 나섰지만, 맥락이 겹치고 겹친 이 사건이 누군가의 고의가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방송 제작 환경의 문제이자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안이라고 해명한 공허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시청자들의 분노는 사건이 터졌을 때보다 더욱 타올랐다. 덕분에 조사는 끝났지만 돌아올 길은 더 늘어났다. 매일 시초가에 연상을 찍는 수준으로 주가가 상승하던 이영자는 직격탄을 맞았다. 수년 전 이영자가 세월호 유족들과 나눈 아픔의 눈물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도 있었던 만큼 연기자 입장에서 굉장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데다 지난 주말 방송가에 만연한 일베 이미지 사용 문제를 모처럼 강도 높게 비판한 <연예가중계>도 조작된 이미지를 두 차례나 원본 이미지로 사용하며 머쓱함을 넘어서 모두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이 이번 사건에 배신감과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극우사이트의 해악이 우리의 일상 속에 교묘하게 스며들려는 시도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사는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여전히 등한시하며 정도에 따라 조아리는 머리의 각도만 조금씩 낮추는 형국이다. 확률상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뉴스 보도 중 발생한 일이었다면 오히려 이런저런 해명과 사과만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예능이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만만해서가 아니라, 요즘 예능은 마음을 주고 웃음을 나누는 일상의 이웃이자 친구라는 태도로 시청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놓고 가까이 한 친구가 실은 일베를 하는 녀석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기분이 꺼림칙한 일이 된다. 요즘 예능에 올바름은 웃음을 위한 기본 토대다. 예능에서 말하는 재미라 함은 함께하는, 혹은 살고 싶은 세상의 행복과 지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이번 조사 결과가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안일함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원론적인 해답과 사과만을 반복하는 것은 오늘날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힘과 지위, 대중의 관심과 호흡, 피드백을 놓고 봤을 때 대중의 수준에 맞추지 못한 소통이다. 누군가를 강력히 처벌할 수 없다면, 문제를 집어낼 수 없다면, 어떻게 다시 그런 일이 발발하지 않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확실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의는 없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다 이외에 어떤 식으로 문제를 예방하겠다는 방법론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이영자의 맛집 지도를 기대하던 시청자들도 이 정도 선에서 눈감고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예능이 쉽고 친밀하고 일상적인 콘텐츠인 만큼 정서적 몰입의 정도도 남다르다. 실망의 깊이는 더욱 깊다. 오늘날 예능의 재미는 우리네 일상과 연동되어 있다. 여기서, 예능이 다큐와 다른 점은 옷가게의 전신 거울처럼 실제보다 더 날씬해 보이고 옷맵시가 사는 거울이란 점이다. 우리네 일상보다 나은 행복과 세상을 보여주며 재미를 창출하는 콘텐츠인데, 오늘날 예능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시청 행위와 급이 맞는 출구 전략 대신 지금과 같은 원론적인 사과만으로는 과오를 되돌리기 한참 부족해 보인다. 모처럼 나타난 신생 인기 예능인데, 결국 <전참시>는 이번 주도 결방할 예정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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