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했다. 처음에 이해되지 않던 글도 반복해서 읽으면 의미가 드러나곤 한다. 마치 점선이 이어지면서 그림의 윤곽이 나타나는 것처럼, 단어와 단어가 맥락 속에서 연결되면서 뜻이 통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문장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이해력이 낮거나 열심히 읽지 않아서가 아니다. 글을 잘못 썼거나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영국 속담은 어떤 경우일까?

‘와인을 중간으로 하고 위에는 기름, 밑에는 꿀이 있는 게 최상이다.’
‘Of wine the middle, of oil the top, and of honey the bottom is best.’

전부 쉬운 단어인데,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독서백편’을 포기하고 번역을 탓했다. 내 나름의 풀이를 궁리하며 인턴기자의 생각을 물었다.

인턴기자가 와인 전문가에게 문의해 들은 답변을 전해줬다.

“글쎄요. 와인과 기름과 꿀을 섞으면 기름이 위에 뜨고 와인이 중간, 꿀이 바닥에 고이는 건 맞는데. 무슨 뜻인지는….”

이 설명 또한 그럴듯하지 않다. 과연 실생활에서 누가 와인과 기름과 꿀을 섞겠는가. 그런 칵테일은 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마시기도 곤란하다. 바닥에 고인 꿀은 잔을 기울여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나는 인턴기자에게 내 해석을 들려줬다. “식사 때 순서를 말하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올리브 기름을 두른 샐러드를 먼저 먹은 뒤 와인을 곁들여 메인 디시를 맛보고, 꿀처럼 맛이 달콤한 후식으로 마무리하는 순서가 좋다는 뜻 아닐까?”

나는 “내 풀이가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앞의 두 해석보다는 훨씬 그럴듯함을 은근히 강조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개운하지 않았다. 영국 속담 사전을 뒤져 뜻풀이를 찾아냈다.

‘와인은 병의 중간 부분이 가장 낫고, 기름은 위, 꿀은 바닥에 고인 게 최고다.’

내 상상력에 대한 자부심을 치르고 얻어낸 정답이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포토그래퍼 쟁이]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