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안아줘’ 장기용·진기주에게 기대되는 수준 높은 로맨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절치부심 휴식기간을 보냈지만 MBC 주중 드라마는 성공적인 성적을 얻지는 못했다. <위대한 유혹자>와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과거 MBC의 명성에 어울리는 드라마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오히려 현재의 MBC 드라마 위상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까웠다.

로맨스에서 실패한 MBC는 두 번째 승부수로 살인이 난무하는 장르물을 택했다. 그 중에서 <이리와 안아줘>는 꽤 독특한 색깔을 지녔다. 이 작품은 <위대한 유혹자>처럼 가볍지도 않고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처럼 낡은 감성도 아니다.

사실 <이리와 안아줘>의 첫인상은 제목에서 주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의 드라마는 아니었다. <이리와 안아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윤희재(허준호) 밑에서 자란 어린 나무(남다름)가 편견을 깨고 채도진(장기용)이란 인물로 성장하는 성장담이다. 부모의 죽음 이후 어린 낙원(류한비)에서 이름을 바꾸고 한재이(진기주)로 자란 주인공과의 로맨스가 그려질 듯하다.



하지만 정작 극 초반의 <이리와 안아줘>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물에 가깝다. 이 작품은 어린 나무의 환경을 보여주기 위해 사이코패스 아버지인 윤희재의 악행들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윤희재 역을 연기하는 허준호의 악역 연기는 극 전체를 지배할 만큼 강렬하다. 감정 없는 짐승의 눈으로 인간과 개는 하등 바를 바 없다고 아들 나무에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라. 젊은 여성을 살해한 후 피범벅이 된 얼굴로 카메라를 돌아보는 그의 눈빛을 보라.

더구나 허준호의 연기만이 아니라 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화면에 담아내는 연출의 솜씨 역시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완벽하다. 이만큼 완벽한 미장센과 편집, 음향으로 공포를 향해 걸어가는 공중파 드라마를 최근에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특히 적나라한 살인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오싹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이리와, 안아줘’가 아니라 ‘저리가, 무서워’의 느낌이 들 정도로 이 드라마는 빼어난 스릴러의 매력을 보여준다.

다만 문제는 <이리와 안아줘>가 스릴러 중심의 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 나무는 첫사랑 낙원을 통해 강해지기를 바란다. 사이코패스 아버지의 말처럼 인간이 개와 똑같은 짐승이기에 약육강식의 세계에 강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해 강해지기를 바란다. 채도진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어린 나무는 한재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낙원을 만나 이제 다시 그녀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리와, 안아줘>는 이 두 남녀의 로맨스를 진행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우선 강렬한 스릴러 느낌 탓에 로맨스의 분위기가 묻힐 위험이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부모를 죽인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을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라는 점이다. 어린 낙원의 부모를 죽인 인물이 바로 나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전자는 그렇게 큰 위험부담은 없을 것 같다. <이리와, 안아줘>는 스릴러적 분위기가 압도적이었지만 그 사이 어린 나무와 어린 낙원의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잡아내는 데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아버지를 둔 어린 나무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시골마을에서 살아간다. 서울에서 여배우의 딸로 태어난 낙원은 시골마을에 와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시골마을의 외톨이였던 그들은 서로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존재임을 깨달아간다. 이 아련한 분위기를 <이리와, 안아줘>는 시골의 전원풍경 더불어 아름답게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끔찍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분위기가 공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초반에 불과하지만 <이리와, 안아줘>는 이 이질적인 분위기를 하나의 풍경에 담아내는 데는 성공한 듯싶다.

하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를 설득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리와, 안아줘>는 이 어려운 로맨스를 막무가내로 엮을 생각은 아닌 걸로 보인다. <이리와 안아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이 로맨스의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룰 것을 암시한다.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두 인물의 수준 높은 로맨스로 말이다. 만약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리와, 안아줘>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2018년 가장 인상적인 MBC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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