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의 인과론, 미래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정해진 미래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JTBC 새 금토드라마 <스케치>가 그리려는 이야기의 소재는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예지력’을 소재로 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그렇게 미리 알게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수한 인물들을 다뤄왔기 때문이다. <스케치>는 3일 안에 벌어질 미래의 사건을 미리 스케치로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라는 형사와 그 팀에 그 ‘운명적인 사건’으로 인해 합류하게 된 강동수(비)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안간힘을 담고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스케치>를 소개하고 나면 사실 새로울 건 없어 보인다. 물론 예지력이 다른 것이 아닌 ‘스케치’를 통해 그려진다는 설정은 이색적이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을 담은 몇 장의 그림들은 그저 그려져 제시될 뿐, 그 인과관계를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림만으로 추론해 생각한 스토리가 사실은 엉뚱한 추론이었다는 게 드러남으로써 이를 추적하는 형사들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성 범죄자에 의한 범행이 벌어질 것으로 여겨 그를 보호하게 위해 강동수와 유시현이 찾은 여자가 알고 보니 이미 한 달 전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 그렇다. 사건이 벌어지는 걸 막으려 갔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의 단순기록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스케치에 나타난 것이 이 여자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는 사실은 형사들을 혼돈 속에 빠뜨린다. 예지력은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걸 지시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는 형사들은 그 정해진 미래를 바꾸려 애쓰지만 바뀌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절망에 빠질 것이다. 예지력을 담는 스케치라는 방식이 흥미로운 이유다.



또한 벌어질 사건들이 완전한 타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름 아닌 강동수와 결혼할 예정이던 민지수(유다인) 검사라는 점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성범죄가 예고된 여성의 남편으로 등장할 특전사 대원 김도진(이동건) 역시 사건에 휘말리면서 향후 이야기에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미래를 바꾸려 했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늘 보던 죽음들이 그저 타자의 죽음으로 여겨졌을 때 별다른 마음을 쓰지 않던 강동수는 이제 그 죽음의 대상이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로 바뀌면서 달리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을 구해내려는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이것은 아내를 읽어버리고 분노하게 되는 김도진에게도 마찬가지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예지력이라는 판타지 설정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여기 등장할 사건들이 주는 현실감이다. 첫 번째 사건으로 하필이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 우연한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 무수하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던 그 마음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몰입감을 부여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과연 정해진 미래는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당장 벌어질 어떤 사건을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미 첫 회에 등장해 이 ‘스케치 판타지’를 설명한 유시현은 말한 바 있다. 이른바 ‘인과론’이라는 것. 결과를 바꾸기 위해 원인을 바꾸는 그 과정을 통해 실제로 결과가 바뀐다면, 그 바뀐 결과가 야기할 또 다른 결과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롭진 않아도 <스케치>라는 판타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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