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만 좋으면 다 좋다? 드라마들이 과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이 종영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낼까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해피엔딩을 담아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신의 실수’로 시작됐던 이 일들을 시간을 되돌려 원점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로 되돌아갔다면 해피엔딩이 아니라 다시 똑같은 사건이 반복됐을 것이지만, 신은 여기에 기적 하나를 넣었다. 그건 시간을 되돌리며 그 육신임대를 하며 겪었던 기억들을 가져가게 한 것이다. 결국 기적은 기억을 통해 가능하게 됐다.

은행장 송현철(김명민)은 자신을 둘러싼 비리의 고리들을 끊어내려 했고, 아내인 선혜진(김현주)과 가족들에게 살가운 모습으로 돌아갔다. 선혜진에게는 하고픈 일을 하라고 권했고, 아이들에게는 성적보다 그들이 원하는 걸 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중국집 송현철(고창석)은 사고를 피했고 은행 대출관련 문제들도 은행장 송현철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풀렸고, 그 풀린 상태는 경험했던 기억들을 통해 더 좋은 결말을 맺었다.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이 하나의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가 그간 걸어왔던 과정들이 과연 이 메시지를 위한 다양한 울림을 주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남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신의 실수’를 통해 시작된 이 이야기를 다시 시간을 되돌리는 ‘신의 선택’으로 마무리한 점은 도무지 풀어낼 수 없는 갈등과 파국의 끝에 신이 내려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고대 그리스 희곡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건 어쩌면 너무 과정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결말일 수 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결말에 이르러 그 기적의 실체를 보여줬지만, 과정을 통해서는 좀체 그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타인의 육신으로 들어간 영혼이 하게 되는 ‘두 집 살림(?)’의 이야기는 그 서로 다른 계층이 가진 삶의 방식들이 충돌하면서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지는 ‘기적 같은 감동’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 과정에서 주로 보여준 건 두 남자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인물이 ‘정체성 혼돈’을 일으키며 ‘불륜’ 같은 느낌을 주는 ‘두 집 살림’ 이야기였다.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실망감이 느껴질 수 있는 과정들이었다.



이즈음에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모든 스토리의 캐릭터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그러다 보니 밀도가 떨어지는 과정들이 결말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를 단번에 보는 콘텐츠가 아니다. 따라서 사실상 ‘과정’이 드라마 콘텐츠의 핵심적인 실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좋은 시작을 가진 기획을 가진 드라마가 어느 순간부터 힘을 잃어버린 채 중간 과정의 난항을 겪다 그럭저럭 괜찮은 결말을 통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시작과 결말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벌어지는 ‘과정의 난항’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사전 제작의 미흡함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고, 또 미니시리즈 하면 16부작을 떠올리는 그 길이가 사실은 한 작품이 완성도 있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점도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주로 수익적인 차원에서 드라마의 제작방식과 편성에 작품이 맞춰지다보니 생겨나는 부작용이라는 것.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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