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예능 ‘식량일기’는 과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의 새 예능 <식량일기> 닭볶음탕 편이 시작됐다. 제목 옆에 당당히 음식 이름을 붙였지만 맛있는 한 끼를 차려내는 쿡방이 아니다. 닭볶음탕의 모든 재료를 직접 키우고 수확해서 먹는 게 기획 취지로서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서 자리를 잡은 도시농부 7인의 성장기와 농장 라이프를 담은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다.

외형이 엇비슷해 유사한 것 같지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를 보여주는 <삼시세끼>와는 음식에 접근하는 법이 다르고, 같은 도시농부 콘셉트로 방송을 한 바 있는 <인간의 조건>과는 당시 출연했던 박성광이 실토했듯이 촬영 때만 작물을 보는 게 아니라 보다 진정성 있게 임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식탁에 오르는 모든 음식 재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에 포커스를 둔 것이 <식량일기>만의 차별점이자 매력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시청자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의문이다. 한때 전 세계 요식업계의 판도를 뒤바꾼 ‘Farm to table’운동과 같이 건강한 먹을거리, 식재료에 대해 화두를 던진 것도 좋았고, 직접 부화시켜 기른 병아리가 닭이 되었을 때 잡아먹을 수 있느냐는 가치 판단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능에서 식량에 대한 관점, 육식에 숨겨진 생명윤리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신선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각을 잡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넘어 막간 토론까지 펼치는 의미부여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 생계나 생존을 위한 축산과 애지중지 기르는 반려동물에 대한 구별과 가치판단이 그렇게 첨예한 토론거리가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방송을 보면서 식량에 대한 고민이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겠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당위도 납득되었지만 3개월간 25톤의 흙을 쏟아 부어 조성한 인위적인 밭과 주거 공간에서 방송 출연을 계기로 뭉치게 된 멤버들이 보여줄 진정성이 과연 ‘방송을 떠나서’라고 말할 만큼, 시청자들을 감복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실을 베이스로 한 리얼리티. 그러니까 단순히 프로그램 촬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바쁜 스케줄을 진행하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애정을 쏟고 관심을 갖는 다는것을 내세운 리얼리티는 항상 특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세계 속에 출연자를 데려다 넣는 극화된 설정에 비해 약했다.

<정글의 법칙>이나 나영석 사단의 예능 속 출연자들은 오롯이 그 세계관 속에 접속하고 그 논리로 살아가면 되는 일종의 영화나 드라마 같은 폐쇄된 울타리다. 반면 방송을 넘어선 ‘진짜’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룸메이트> <인간의 조건> <에코빌리지 즐거운가> <이불 밖은 위험해> 등은 아무리 의미가 있고 우정을 쌓는 성장 공식이 있더라도, 방송에 의한, 방송을 위한 상황과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얼함을 내세운 스토리텔링에 한계가 드러나고 공허해졌다. 아무리 어떻게 포장하고 포착하려고 해도 실제 삶과 프로그램의 역할이 동기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산업에 대한 고민이나 경작법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진정성을 자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농가에서 자연, 이웃과 어우러져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파쇄석이 가득한 빈 공터에 인위적으로 ‘농장’을 마련하고 연예인들이 스케줄에 맞춰와 농사를 짓는다는 것부터가 이미 요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담보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냉정하게 말해 별다른 동기나 공부 없이 방송을 위해 조직된 인위적인 도시농부 콘셉트는 요즘처럼 살고 있는 집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오는 시대에 그리 획기적인 시도는 아니다.

<식량일기>는 일정 부분 의도한 대로 병아리를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방송 후 동물권단체들이 폐지 요구를 하는 등 꽤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다. 제작진은 조금 더 지켜봐달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농축산업의 수고로움을 보여주는 한편, 우리가 애써 외면한 육식의 이면을 꺼내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치판단이 농사 예능으로 끌어들이는 재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구온난화와 축산업을 연결시키는 것도 아니고, 농업선진화를 모토로 내건 것도 아니고, 고집스럽고 학구적인 유기농법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출발이 닭볶음탕이라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걸 기획된 농장에서 생산한다는 가벼움과 진지한 고민이 어떤 의미나 재미로 연결될 수 있을지, 키운 닭을 잡아먹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회를 거듭할수록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남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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