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하고 있는 토크쇼의 안타까운 현주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목요일 밤에는 현재 남아 있는 예능 중 가장 전형적인 토크쇼 두 편이 동시에 방송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예능 패러다임을 이끌던 이들 토크쇼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웃음과 진지함, 감동 모든 감정을 진두지휘하는 메인 MC의 존재다. 단 한 명의 메인 MC가 좌중의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패널과 게스트들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거나 리액션에 참여한다. 둘째는 웃음 속에 배어든 땀과 노력이다. 진짜로 재밌어서 웃고 떠든다기보다 정말 열심히 방송을 촬영하고 있다는 생활인의 노고와 결연함이 웃음에 담겨 있다. 셋째로, 전형적인 접근과 형식적인 전개다. 홍보성 섭외부터 시작해 친분, 연애, 실수담 등 스테레오 타입화된 굉장히 뻔한 설정과 에피소드를 주고받으며 입담만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으려 한다.

이 두 프로그램이란, 한 편은 많이들 예상했을 관록의 KBS <해피투게더>이고, 다른 한편은 또 한 번 리뉴얼을 한 tvN <인생술집>이다. 특히 또 한 번 리뉴얼한 <인생술집>의 변화가 흥미롭다. 칵테일바를 콘셉트로 장도연 대신 한혜진이 가세하고, 세트 분위기를 바꾼 <인생술집>은 칵테일을 내세우긴 했지만 요즘 유행하는 스피크이지 스타일의 칵테일바와는 거리가 멀고 기존의 ‘술집’ 콘셉트에서도 많이 벗어났다.



<인생술집>의 출발점이 어둑한 술집에서 은은하게 취기 오른 상태에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것을 특화된 포맷으로 삼았던 것에 비해 변화를 거듭하면서 전형적인 스튜디오 토크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촬영장도 방송 세트처럼 밝고 화사하게 바꿨고,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순발력이 뛰어난 신동엽과 김희철이 게스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서로 너무 잘 맞는다는 듯 공감의 맞장구를 치면서 분위기를 이끈다.

그 사이 이 프로그램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었던 안주에 대한 이야기나 술자리의 무드는 사라졌다. 이번 주 방송에서 연애대작이라 하여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연애담, 연애의 어려움,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썸도 만드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덧붙인다. 대본을 옆에 놓고, 칠판에다가 각자의 에피소드 제목을 쓰는 것부터 술집에서 도란도란 혹은 시끌벅적 콘셉트와는 결별하겠다는 사인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진부한 토크쇼들과 차별점으로 내세운 아늑한 분위기의 술집에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함께하는 정서와 시청자들도 함께 한 잔 하면서 지켜보는 듯한 프로그램이란 초기 기획의도는 옅어졌다. 무엇보다 변화를 추구할 때마다 늘 세트와 보조 진행을 하는 여성MC, 존재 가치의 의문을 품게 하는 사장, 알바생 등의 보직만 바꾸는 수준으로 변화를 단행했다고 한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리뉴얼을 거듭할수록 신선함을 잃는 이유인 듯하다. 잘되는 술집은 절대로 종목에 변화를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해피투게더>는 자사의 신생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의 홍보에 한 회의 대부분을 투자했다. 방송의 재미를 떠나 <해피투게더>가 지금 누군가를 도울 그럴 입장인가 싶은 생각을 떠올리게 된 한 회였다. KBS의 유일한 스타 PD라 할 수 있는 유효진 PD의 신작으로 홍보는 필요하겠지만, 월드컵 정도의 이벤트도 아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런 정도로 대놓고 펼치는 홍보성 출연은 프로그램의 기반이 튼튼할 때나 해볼 수 있는 기획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현재 <해투>나 어떤 신생 프로그램이나 누가 누굴 도울 입장이 딱히 아니다. 노골적인 홍보성 출연, 자사 프로그램 끌어주고 당겨주기는 내부에선 아름다운 화합인지 몰라도, 예능 시청자 입장에선 사라졌으면 하는 적폐 중 하나다. 목적의식이 너무 분명한 나머지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MC진의 역할이 팬클럽이나 콘서트 사회자 역할 이상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블과 종편의 시즌제 예능 제작이 보편화되고, 공중파 채널들도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예능을 접할 기회가 늘고 있다. 그런 동시에, 패러다임의 고착화, 젊은 세대의 지속적인 이탈 등의 요인 탓인지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하고 쉬운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최근 읽을 수 있는 예능계의 두드러진 흐름인 듯하다. 실험의 끝이 복고가 되어선 안 된다.

예능의 외형은 분명 확장되었는데 재밌는 시도와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회귀 풍토가 단순히 외면을 받는 속도를 늦추는 정도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볼리비아전을 해설하며 토로했던 안정환 의원의 말처럼, 이왕 어려움을 겪는 게 뻔히 보인다면 차라리 해볼 건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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