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 상하관계 속 멜로 어째서 달리 보일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부회장과 비서. 둘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는 로맨스일까 아니면 스캔들일까.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벌어지는 멜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영준(박서준)이라는 유명 그룹의 부회장을 9년 째 보필해온 비서 김미소(박민영)가 어느 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벌어지는 멜로다.

즉 늘 옆에 있을 때는 잘 몰랐던 그 김비서의 존재감을 그가 그만 두겠다고 하자 새삼 느끼게 되는 이영준은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두려 노력한다. 일부러 설문조사를 해서 김비서가 원하는 로망을 알아낸 뒤, ‘블록버스터급 이벤트’를 경험하게 해주기도 한다. 재벌가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면 늘 나오는 “내가 다 빌렸어”하는 느끼한 멘트와 함께.

김미소로서는 도대체 왜 부회장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를 알 수 없다. 하루는 늘 그러했듯 차갑게 굴다가 다음 날에는 너무나 달콤하게 군다. 이미 익숙한 비서를 바꾼다는 게 불편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알고 보니 이영준이 김미소를 단지 비서로서만이 아니라 여자로서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김미소에게도 이영준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넥타이가 조금만 비뚤어져도 자연스럽게 먼저 손이 가는 게 단지 비서로서 9년 간 함께 해왔던 시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언감생심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지만, 이영준의 달라진 행동 속에서 김미소도 어떤 설렘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즉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직장 내 상하관계라는 틀 속에서 부회장과 비서로서의 직능적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이영준과 김미소라는 사적인 관계로 변화하는 그 과정을 멜로로 포착해내고 있다. 그것은 직능적 관계가 아닌 인간적 관계로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제목에는 그래서 여러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갑자기 김비서가 아닌 김미소로 보이는 이영준이 던지는 질문이며, 김비서가 그러는 이유가 비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함이라는 걸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하며,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이영준에 의해 김비서의 마음이 왜 흔들릴까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관계의 변화는 다른 시선으로 보면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은 이른바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권력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적인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랑으로 포장된’ 권력관계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영준과 김미소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마음으로만 느끼는 설렘일 때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던 관계가, 어느 순간 가까워지고 스킨십이 진해지기 시작하면서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오게 된다. 어째서 똑같은 관계를 보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설렐 때 누군가는 불편해질까.

물론 이런 신데렐라 구조의 이야기는 오래된 드라마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많은 왕자님들과 본부장과 재벌3세들이 등장했던 것이고, 그 잘난 면면들 앞에서 평범해 보이는 여성들이 가슴 설레는 로맨스를 판타지로 꿈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투 운동 이후 남녀 관계의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뭇 달라졌다.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가 이 관점에서는 마냥 달콤하게 보기만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과연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 우려 섞인 시선을 극복해내고 온전한 설렘을 줄 수 있는 멜로를 그려낼 수 있을까. 상하관계라는 틀을 벗어나 이영준과 김미소라는 두 개인의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동등한 위치에서 그려질 수 있는가가 이제 이 드라마의 중요한 관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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