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환의 이하늘·김창렬 고소를 지지하는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겠는데, <돼지의 왕> 후반부를 보면 학교 조회 시간 때 투신 자살을 해서 학교와 자길 괴롭힌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아이가 나온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내뱉은 순간 난 그냥 이렇게 말해버리고 싶었다. 넌 진짜로 그게 복수가 된다고 생각하니, 얘야? 가해자들은 원래 자기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건 신경도 안 써. 걔들의 기억력은 금붕어에 맞먹고 자기기만의 능력은 보통 사람들의 서너배지. 네가 그렇게 죽어봐야 며칠 시끄러운 소동으로만 남을 거야.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기억 못할 거야.

몇 년 전, 임상수가 감독한 <하녀> 리메이크의 클라이맥스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아줌마야, 도대체 왜 그렇게 무익한 일을 하는 거야. 그런 짓을 한다고 앞으로 그게 그 사람들에게 티끌만한 짐이라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이 두 영화에서 자살은 각자 고유의 의미가 있고 드라마를 끌어가는 논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을 하려는 것은 보다 단순한 것이다. 복수의 도구로서 자기 파괴는 쓸 데 없다. 당신이 대상으로 삼을 가해자들은 당신이 죽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가해자가 아니었다. 세상 대부분의 폭력은 악의가 아닌 무관심과 무감각에서 나온다. 그것이 <돼지의 왕>에서 그린 것 같은 끔찍한 학교 폭력이건, 친구들 사이에서 무심코 오가는 막말이건, 매커니즘은 같다.

최근 며칠 동안 난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에서 그에 대한 예를 충분히 건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난 얼마 전 손호영이 <강심장>에서 가출했다가 길가는 아이들의 삥을 뜯었던 경험을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걸 보았다. 그는 나중에 형식적인 사과를 하긴 했지만 진심이 안 보였다. 우선 그런 사과는 웃으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당시 그가 저지른 폭력의 무게를 저울질 할 사람은 가해자인 손호영이 아니라 당시 돈과 물건을 빼앗겼던 아이들이다. 지나간 일, 철이 없었던 때의 일이라 축소하는 건 그의 역할이 아니다. 그걸 모른다면 어떻게 그게 사과일 수 있을까.

얼마 전 <해피 투게더>에서 같이 활동했던 전 멤버를 박치라고 놀려댔던 이하늘과 김창렬도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난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가만히 있던 사람이 방송을 보고 옛 동료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정도라면 그건 단순히 쇼를 재미있게 하는 수준의 말장난은 아니었다는 걸 알겠다. 그건 아무리 봐도 과거의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조롱이었다. 고소 뒤에 이어진 '사과'는 더 가관이다. 방송중단 선언 이후 트위터 발언도 문제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이 옛 동료에게 가한 폭력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이 두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무심함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한 폭력의 무게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고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태도가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 안에서 당연히 용납된다고 생각했다. 하긴 후자의 경우는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서 실언을 좀 한 거 가지고, 옛 동료들을 고소한 건 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피해자가 자신이 외치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대변해줄까? 그를 그냥 참고 있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면 그 남자다움은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부당함에 대한 침묵은 가해자의 감각을 다 무디게 할 뿐이다. 그게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다를 게 없다.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가해자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지 않고 정당하게 되받아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자기네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돼지의 왕>으로 돌아간다면, 난 사실 그 이후의 사건 전개는 안 믿는다. 그 말을 한 아이의 성격을 고려해본다면, 자살은 너무 소극적이다. 적어도 자살 하기 전에 보다 화끈한, 진짜로 가해자들이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일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애였다. 나는 그게 뭔지는 구체적으로 말 못하겠다. 끔찍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화로 그린 허구의 세계를 사는 아이도 그 상상력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면 그거야 말로 진짜 끔찍한 일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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