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다시 입증한 김제동의 존재가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10년간 김제동은 예능 패러다임의 변화와 상관없이 TV활동을 줄였다. 그사이 김제동의 소식과 모습은 사회나 정치 뉴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현재 공중파 넘버원 예능인 <미운 우리 새끼>에 초창기 참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하나 싶더니 금세 하차했고, <무한도전>을 비롯해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간간히 등장하긴 했지만 <스타 골든벨>시절 톱 MC 수준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김제동이 시류에 뒤처지거나 매너리즘 때문에 식상해진 건 아니었다. 방송과는 별개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콘서트를 10년째 성황리 진행하고 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스탠딩 토크쇼를 김제동보다 더 잘 진행할 수 있는 MC는 없다.

그런 그가 최근 부쩍 자주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어 달 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활동을 시작하더니, 지난달 29일에는 <톡투유> 시즌2가 시작했다. 그리고 이쪽 동네의 대표적인 저잣거리라 할 수 있는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다시 한 번 반가운 입담과 존재감을 뽐냈다. 이번주 <라스> ‘보이는 라디오스타’ 특집은 최근 DJ로 입성한 김제동, 양요섭, 정승환과 지원사격을 나온 ‘꼰대’ 지석진이 출연한 역시나 자사 홍보성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지석진, 김제동의 관록에다 MC 4인방의 두터운 친분이 곁들여지며 모처럼 쉴 틈 없는 수다와 웃음의 판이 벌어졌다.



김제동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중심에 섰다. 적재적소에 말을 이어주고, 간섭받고 놀림 받는 노총각 캐릭터로 토크 지분을 대부분 흡수했다. 물론, 유재석 없이 홀로 나선 지석진의 활약도 모처럼 신선했다. 유재석이 전세 산다는 나름의 빅뉴스를 터트리고, 아무도 짝을 이뤄주지 않던 김국진과 티격태격하며 재미를 만들고, 부인에게 눌려 사는 에피소드와 쌀가마 운동 개인기로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는데, 그런 그에게 전형적인 ‘꼰대’ 캐릭터를 부과해 재미를 증폭시킨 이도 바로 김제동이었다.

이번 방송이야 명백히 MBC 라디오국의 프로모션성 출연이었지만 김구라, 윤종신, 지석진 등 그 어떤 MC와도 어우러질 수 있는 김제동의 진행 능력의 재확인과 함께, 김제동이 갖고 있는 캐릭터가 곧 예능 콘텐츠화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가늠하는 자리기도 했다. 가장 많은 웃음 지분을 차지한 것이 김제동의 모태솔로(임을 의심받는)라 추정되는 노총각 캐릭터였다. 말은 너무 잘하는데 연애는 잘못하고, 결혼은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비혼으로 사는 비운의 사내는 곧 다양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캔버스가 됐고, 운 좋게도 그 캔버스의 주인이 입담으로는 손꼽히는 김제동이다.



미모의 미혼 작가에게 치근덕거림이 의심되는 빵 에피소드나 본의 아니게 배우 정은채를 실검에 올려버리는 등 연애 관련 각종 조언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받는 상황은 비단 토크쇼뿐 아니라 오늘날의 주류라 할 수 있는 관찰형 예능에서도 주목받을 만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김제동은 뚜렷한 색깔이 있지만 함께 출연한 양요섭, 정승환과 별다른 친분이 없어도 MC진의 질문을 적절히 순화하거나 증폭해주고 또, 말을 들어주는 허브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데서 유연함과 함께 오늘날 예능이 추구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엿보였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오늘날 예능에서 캐릭터는 곧 콘텐츠다. 이영자의 캐릭터가 돌고 돌아 다시 사랑받고 있듯, 김건모가 가수가 아니라 50세의 엉뚱 남으로 특별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듯이, 김수미가 반찬 만드는 것이 재미가 되는 등 올드보이들이 다시 사랑을 받는 건 그동안 지켜봐온 세월이 캐릭터를 받치고 있고 그것이 곧 리얼한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노총각, 삶의 가치관, 삶의 고민 등 김제동은 그 어떤 예능인보다 독점 자체 콘텐츠가 많다. <라스>에 첫 출연한 김제동은 요즘 예능에서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맛보기로 보여줬다.

캐릭터가 곧 콘텐츠가 되는 시대에 다시금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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