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마’, 어떻게 원작 그림자 극복하고 시청자 사로잡았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얼핏 보면 익숙한 요소로 가득하다. 1980년대 배경의 복고코드와 ‘투캅스’ 형 인물 배치 등 타임슬립물로서도, 형사물로서도 진부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제 6회를 마친 시점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이다. 국내 리메이크작 중 역대 최고라는 상찬에, 원작 방송사인 BBC의 호평까지 들려온다. 과연 이 드라마는 걸작이라 칭송받는 원작의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하고 시청자를 사로잡았을까. [TV삼분지계]에서 <라이프 온 마스>의 매력을 살펴보았다.



◆ 흔한 설정도 흥미롭게 살려내는 정경호의 연기

또 타임슬립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거기에 반전 매력의 노회한 경찰과 원리원칙대로 행동하는 깐깐한 젊은 경찰, 투캅스의 날선 대립 자체가 흔하디흔한 소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라이프 온 마스>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한태주 역할의 정경호 때문일 게다. 정경호는 신기할 정도로 상대 배우와 합이 좋은 연기자다. 아니 합을 잘 맞춘다는 쪽이 더 맞는 말이겠다. 신들인 듯 연기를 잘해도 상대 영역을 침범해 기운을 빼놓는 연기자가 있나하면 그와 달리 선을 잘 지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둘 다 살려내는 연기자가 있다.



정경호는 후자 쪽이다. 전작인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준호 역 때도 주인공 제혁 역의 박해수를 한 걸음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동시에 신인 연기자 임화영과는 달짝지근한 로맨스를 전개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사사건건 부딪히는 강동철 형사 역의 박성웅은 물론 고아성, 오대환 등 동료 경찰 역할의 연기자들, 그리고 아버지 역의 전석호와 더 나아가 고모 한말숙 역의 김재경까지, 다양한 인물들과 서로 다른 감정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경호는 SBS 예능 프로그램 <도시의 법칙 in 뉴욕>(2014) 적에도 예능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백진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첫 출근을 하던 날 백진희의 카드가 오류를 일으키자 당황하는 백진희에게 카드를 건네고 자신은 달음박질로 시간에 맞춰 직장에 도착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배우는 그저 연기만 잘 하면 최고라는 이들이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경호처럼 상대 역할을 세심히 배려하는 배우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역대 최고 리메이크작의 가능성이 보인다

올해만큼 리메이크드라마가 발군인 해가 있었을까.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인상적인 드라마들을 돌아보면 대부분 리메이크작이다. 먼저 사카모토 유지의 동명걸작을 완벽하게 리메이크한 tvN <마더>가 있었고, 시청률은 저조했으나 수려한 연출과 획기적인 여성 연대 묘사가 돋보였던 OCN <미스트리스>가 있다. 그리고 원작 방송사 BBC의 호평이 과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라이프 온 마스>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해외 장르물로부터의 영향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수사드라마 분야에서 완벽한 로컬라이징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가산점을 받아야 한다. 이는 단지 복고코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작의 완벽한 재해석으로 이룬 성취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수사반장>의 인용이다. 한국형 수사물의 원조라 불리는 이 드라마는 많은 복고 수사물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단골 소환돼왔다. 그러나 <라이프 온 마스>의 <수사반장> 인용은 단순한 시대적 코드를 넘어서 원작과 그 스핀오프 시리즈 <애쉬스 투 애쉬스>까지 이어지는 주제와 연결되는 핵심 설정이다. 형사들의 직업적 애환과 노고를 기리는 원작의 정신을 생각하면 <수사반장>의 박반장(최불암)이 TV에서 나와 한태주(정경호)를 위로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결국 <라이프 온 마스>는 시대, 수사방식, 성격은 달라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이러한 주제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인성서부경찰서의 유일한 여경찰 윤나영(고아성)의 존재다. <라이프 온 마스>는 조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인물이면서도 제대로 된 존칭도 없이 윤양이라 불리며 남형사들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하는 나영의 수난을 ‘외로운 섬’같은 남주인공 태주의 시련과 같은 무게로 다룬다. 그동안 국내 수사드라마에서 표현한 형사의 애환이란 주로 조직의 관성과 부딪히는 소신 있는 남주인공이나 고단한 가장의 몫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형사의 애환’과 성장을 보여주는 윤나영 캐릭터의 의미는 한층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제 6회를 마쳤을 뿐이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여러 모로 역대 베스트 리메이크드라마 상위에 오를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훌륭한 설정, 더 훌륭한 활용

이미 tvN <시그널>(2016)이나 OCN <터널>(2017) 등을 겪은 한국 시청자들에게 타임슬립 형사물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타임슬립 형사물 장르의 원조인 영국 BBC <라이프 온 마스>(2006)를 원작 삼았다는 점도 다른 드라마보다 유리한 점이지만, 주인공 한태주(정경호)가 겪는 타임슬립이 사실은 한태주가 혼수상태에서 겪는 환상일 수도 있다는 설정은 <라이프 온 마스>의 가장 큰 강점이다.

타임슬립물은 종종 차갑고 싸늘한 현재의 대립항으로 정감 있고 따스한 과거를 제시하는데, 이게 형사물이 되면 종종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진다. 증거조작과 강압수사를 밥 먹듯 하는 과거의 수사행태를 ‘투박하지만 진심이 살아있는’ 모습처럼 보여주며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것은 자칫 작품 전체의 윤리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프 온 마스>의 1988년은 실제가 아니라 한태주의 무의식 속에 반영된 1988년에 더 가깝고, 그렇기에 1988년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든 그것은 한태주 개인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것이 실제 1988년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유력한 용의자를 풀어주었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한태주가 자기 자신을 채근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1988년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덕분에 <라이프 온 마스>는 한태주의 성장담인 동시에, 한태주가 경험하는 1988년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법보다 주먹이, 증거보다 직감이 더 가까운 형사 강동철(박성웅)은 한태주의 방식을 너무 순순히 따라 배우고, 다른 남자 경찰들에게 끊임없이 무시당하던 윤나영 순경(고아성)은 심리학과 출신의 프로파일러이자 위장수사의 달인, 거구의 남자 용의자들도 가볍게 들어 메치는 슈퍼 경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실제 1988년이었다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진보들이, 한태주의 무의식 속에서는 보다 더 손쉽게 구현되는 것이다. 훌륭한 설정만큼이나 그 설정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라이프 온 마스>의 설정과 그 활용은 흠잡을 곳이 없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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