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변호사’ 뜨고, ‘스케치’ 진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무법변호사>와 JTBC <스케치>는 둘 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베이스는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장르물 성향의 활극이다. 봉상필(이준기)과 강동수(정지훈)는 이 활극의 일지매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껄렁껄렁한 변호사와 직진하는 형사로 등장한다. 더구나 겉보기에는 참 못된 놈인데 알고 보면 정의감이 살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봉상필과 강동수는 활극의 전형적인 주인공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런 활극의 특징은 주인공이 나쁜 놈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로 간다는 데 있다. 또 하나 활극은 대개 재빠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리얼리티 따위 개나 줘, 로 흘러갈 위험이 높다는 데 있다.

<무법변호사>와 <스케치> 모두 이 약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차문숙(이혜영)이라는 판사가 기성이라는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설정부터가 의문이 든다. 뿐만 아니라 봉상필이 누명을 쓰고 잡혀가는 시점에서 이 드라마의 작위성은 극에 달한다. 이처럼 <무법 변호사>는 좀더 탄탄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설렁설렁 넘기고 흔히 볼 수 있는 만화 같은 활극으로 치닫는 안이함이 있다.



<스케치> 역시 여주인공인 형사 유시현(이선빈)이 미래를 보는 스케치를 그릴 줄 안다는 설정에 갇혀 수많은 작위성을 남발한다. 유시현이 그린 스케치에 맞춰 사건을 짜고, 그 사건을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비틀기 위해 또다시 작위적인 설정이 들어간다.

이처럼 <무법변호사>와 <스케치> 모두 활극의 약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만 두 작품에 대한 반응은 좀 다르다. 한마디로 <무법변호사>는 뻔뻔한데 재밌고 <스케치>는 성실한데 따분하다.



<무법변호사>의 빼어난 점은 이 작품의 재빠른 장면전환이다. <무법변호사>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 각각의 과거와 현재 사건들이 또 있다. 이 수많은 이야기를 <무법변호사>의 제작팀은 보는 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안다. 또한 대사 역시 쓸데없는 부분들은 설명하지 않고 중요한 부분만 재빠르게 치고서 넘어간다. 행동은 많지만 말은 많지 않고, 조잡한 사건들이 많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재빠르게 배치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이 복잡하고 어찌 보면 어수선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배우들의 호흡 역시 탁월하다. 봉상필 역의 이준기는 물론이고, 기성의 괴물 차문숙, 기성의 건달이자 시장인 안오주를 연기하는 이혜영과 최민수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 이 리얼리티 없는 드라마에 배우들의 아우라가 리얼리티를 줄 정도다. 또한 여주인공 하재이 역의 서예지 역시 이 대단한 배우들 사이에서 본인의 색깔과 분위기를 낼 줄 안다. 이들이 베테랑인 까닭은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면서도 배우들끼리 부딪치는 카랑카랑한 장면에서서 서로 밀리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룬다는 데 있다. <무법변호사>에서 팽팽한 탁구경기나 테니스를 보는 것 같은 에너지가 튀어나오는 건 그래서다. 그 때문에 <무법변호사>는 배우들의 호연을 보는 것만으로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면이 있다.



반면 <스케치>는 성실하게 이 드라마의 내용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설명한다. 이러면 <스케치>가 아니라 ‘스피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또한 <스케치>는 너무나 성실하게 이 서사를 그대로 보여주지만 어느 순간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품이 나올 때가 있다. 그 동안 장르물에서 흔히 봐왔던 반전이나 설정들이 드러나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뜬금없이 ‘신기’가 발동해 스케치를 그리는 듯한 여주인공 유시현은 그저 스케치를 그리는 도구일 뿐, 여주인공으로서의 특별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유시현은 항상 위험한 사건에 돌진해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전형적인 클리세에 갇힌 지 오래다. 안타깝게도 유시현는 사건 진행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유시현 캐릭터만이 아니라 아내의 억울한 죽음으로 킬러가 된 김도진(이동건)이나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장태준(장진영) 수사관, 스케치 팀을 이끄는 문재현(강신일) 수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형처럼 그저 드라마의 사건을 위해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안타깝게도 좋은 배우들의 기량을 뽑아낼 만한 역할이나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스케치> 내에서 미친 듯이 뛰고 달리는 것은 오직 강동수(정지훈) 형사 밖에 없다. 하지만 강동수의 액션이 아무리 뛰어나고 그가 위기의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슈퍼히어로로 등장한들 본질적으로 지루한 이야기에 탄력이 붙기란 그리 쉽지 않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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